매년 FA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탬퍼링(tampering)'이다. 정해진 시점 이전에 다른 구단이 선수와 접촉해 계약에 관해 협상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프로야구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야구규약 제160조 1항 '선수계약교섭기간' 조항은 '우선협상기간 동안 해당선수는 원소속구단 이외의 모든 구단(외국구단 포함)과 계약 체결 교섭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탬퍼링 금지조항이다. 이를 어겼을 경우 해당 임직원은 1년 직무정지, 해당 선수는 다음 시즌 페넌트레이스의 2분의1 출장정지와 연봉 50%에 해당하는 벌금 부과라는 무거운 징계가 따른다.
하지만 탬퍼링은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탬퍼링 조항 위반 사실을 밝혀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원소속팀과의 우선협상기간 동안 다른 구단이 접근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구단과 선수의 접촉에는 전화, 이메일, 사적인 만남 등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제3자를 통한 접촉도 충분히 가능하다. 심시어 시즌이 끝나기도 전 예비 FA와 접촉하는 사례들도 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탬퍼링 조항이 제대로 지켜질 리 만무하다. 그래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들은 "지켜지지 않는 조항이라도 있어야 과열 양상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현실에서는 탬퍼링을 포함해 몸값 경쟁을 벌이지만, 겉으로는 FA 과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켜지는 사례가 드문 외국인 선수의 연봉 상한선에 대해서도 KBO와 구단들은 "상한선이 없으면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을 조금이라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며 설득력없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근 노사단체협약 개정을 통해 '계약의 자유' 원칙을 들어 탬퍼링 조항을 없애버렸다. 현재 메이저리그 FA 규정은 원소속구단과의 우선협상기간, 타구단과의 협상기간, 모든 구단들과의 협상기간 등 구체적으로 기간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월드시리즈 종료후 FA 신청을 하게 되면 자유롭게 어느 팀과도 계약 협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선수노조가 탬퍼링 금지 조항이 별 효과가 없음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FA 기간과 관련해 '월드시리즈 종료후 5일까지 각팀은 해당 FA에 대해 계약 의사를 전달해야 하고, 이후 일주일 동안 해당선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해당 FA에게 계약 의사가 있음을 전달해야만 그가 다른 팀으로 갈 경우 다음 시즌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FA가 구단의 계약 의사를 받아들이면 다른 팀과는 계약할 수 없다.
국내 프로야구도 이미 오래전 FA 계약이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이벤트가 됐다. 구단과 FA들간의 협상 뉴스 자체가 이슈다. 전력 강화를 위해 FA 영입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경쟁 양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FA 협상기간 구분은 더 이상 실질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구단과 선수들이 좀더 투명한 분위기 속에서 팀을 결정해도 되는 시점이 됐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