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위기, 글로벌화에서 답을 구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한국 e스포츠는 최근 몇년간 침체기를 겪고 있다.
물론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새로운 종목들이 부각되고 있지만 e스포츠의 원동력이 됐던 '스타크래프트1'이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 FPS게임인 '스페셜포스' 리그의 폐지를 비롯한 국산 e스포츠 종목의 쇠퇴, 세계 경제위기로 위한 후원기업의 위축, 이로 인한 팀들의 해체 등으로 국내 e스포츠 팬들은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는 '한국인이 만들고 세계인이 즐긴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스포츠 콘텐츠이다. 이미 게임과 더불어 '한류'를 이끄는 첨병이기도 하다. 결국 위기 타개책의 하나는 글로벌화라 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스포츠인데다, 직관적인 룰을 가지고 있어 언어와 문화, 국경은 e스포츠의 확산에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고 있다.
또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성장한 한국 게이머들의 수준높은 경기에 해외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17일부터 이틀간 중국 상하이 엑스포 마트(구 상하이 엑스포 아프리카관)에서 열린 '배틀넷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BWC) 그랜드파이널에서 그 희망을 찾아봤다.
▶e스포츠는 역시 한국
BWC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등 2개 종목의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블리자드판 월드컵이라 할 수 있다. 올 4월부터 전세계 600여명의 게이머들이 참가, 지역별 예선을 거쳐 '스타2'에는 32명, 'WOW'에는 10개팀이 참가했다. 이 가운데 e스포츠에 최적화된 게임은 '스타2'로, 한국 게이머만 7명이 나섰다.
이 가운데 정윤종(SKT) 원이삭(스타테일) 장현우(프라임) 송현덕(팀리퀴드) 등 4명이 8강에 진출했고, 이 가운데 원이삭과 장현우가 결승까지 오르며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들은 일리예스 사토우리(프랑스), 사샤 호스틴(캐나다) 등 '스타2'에서 실력과 인기를 모두 겸비한 선수들을 명경기 끝에 제치며 대회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이 대회는 일반적인 초청 이벤트와는 달리 우승 상금만 10만달러(약 1억900만원)에 이르는 일종의 국가대항전이었기에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집중력은 남달랐다.
한국 선수들은 이미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기스타이다. 지난 6월 8명의 한국 프로게이머가 미국에서 열린 MLG(메이저리그게이밍) 대회에 나섰는데, 이들을 보러오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e스포츠팬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는 대회가 열렸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한국 선수들의 경기에 관람객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NBA에서 뛰었던 중국 최고의 농구스타 야오밍도 18일 엑스포 마트를 찾아 경기를 보고 선수들과 잠시 대화를 하기도 했다.
대회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 왕쑤전씨(여·25)는 "평소에 온라인으로만 보던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니 정말 세계 최강의 경기력을 지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또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제니퍼 브론씨(여·27)도 "정윤종과 송현덕 선수의 팬인데, 그들의 플레이 하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뛰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로벌화는 계속된다
'스타1' 경우 10년 이상 주로 한국에서만 즐겼던 고립된 콘텐츠였다. 하지만 2년전 출시된 '스타2'는 세계인들이 즐기고 있다. 비록 국내에서는 이제 막 프로리그와 스타리그 등에 도입돼 한동안 고전이 예상되지만, 눈을 국제무대로 돌리면 다르다. MLG나 MVP 인비테이셔널, BWC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국제대회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이 대회는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등 3개 언어로 실시간 생중계됐다.
게다가 블리자드는 '스타2'의 첫번째 확장팩 '군단의 심장'을 내년 3월 출시한다. 이를 앞두고 BWC를 개최하는 등 e스포츠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기량의 한국 게이머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해 대회 수준을 높이려 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BWC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세계 지역별 리그 후원을 준비중이다. 대회 현장을 찾은 한국e스포츠협회 오경식 사무총장은 "국내 아마추어 게이머 육성과 더불어 협회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e스포츠의 글로벌화"라며 "다양한 e스포츠 주체들과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중이다"라고 밝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미국 메이저리그가 그러하듯 한국 프로리그 콘텐츠를 해외에 적극 판매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일정을 조절해 국내 선수들을 다양한 국제무대에 출전시키고 있다. 가수 싸이를 국제가수로 만든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협력해 경기 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등 PC와 모바일을 망라하는 다양한 플랫폼 활용방안도 진행중이다.
블리자드코리아 백영재 대표는 "곧 나올 '군단의 심장'은 소셜네트워크 시스템을 많이 도입하고 유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등 특히 e스포츠에 열광적인 한국 유저들을 위한 확장팩"이라며 "'스타1'처럼 한국 e스포츠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자신한다. 이를 위해 블리자드는 적극적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상하이(중국)=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