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도, 책임도 감독 몫이다.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하는 고유 권한까지 함부로 침해할 권리는 없다. 다만 토로할 만한 아쉬움이 적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대표팀이란 성격상 월드컵 최종 예선 혹은 각종 대회를 제외하고 테스트로 삼을 평가전 기회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언제나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번 호주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많고 많은 화두 중 '중원의 조합'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 기성용 없었던 최강희호, 역삼각형 배치로 중원 구성.
기성용을 포함 유럽에서 뛰는 자원들을 제외했다. 이 상황에서 최강희 감독은 세 명의 미드필더를 정삼각형으로 활용하던 4-2-3-1에서 역삼각형으로 배치한 4-1-4-1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파격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본인의 데뷔전이었던 지난 2월 우즈벡전에서도, 그리고 5월에 열린 스페인전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전형을 구축한 바 있었다. 모두 기성용이 없었을 때의 경기였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고개는 끄덕여진다. 알짜 공격력을 보유하며 K리그에서는 이름을 날렸지만, 원톱 밑에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을 배치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과 그 짝을 활용하던 대표팀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던 선수들이 본인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인 대신 원톱 밑에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둔 형태는 그들을 활용하는 데 더없이 좋은 시스템이었고, 최강희 감독은 후반 14분 김신욱을 투입하기 전까지 황진성-하대성에게 45분, 고명진-황진성에게 14분을 허락했다.
뚜껑을 연 모습은 어떠했을까. 패스 템포나 정확도가 부족해 공격 전개에서의 세련된 모습이 나오질 못했고, 그 결과 결정적인 슈팅으로 이어갈 만한 장면도 많이 연출되진 않았다. 또, 수비적인 분담이 적절치 않아 박종우를 홀로 남겨둔 수비형 미드필더 진영에서의 공간을 내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훈련할 시간이 적었고, 그동안 발 맞출 기회도 없어 실전에 처음 투입됐던 조합임을 감안하면, 전방에서 조직적인 압박을 가하며 때로는 번뜩일 만한 패싱 플레이를 펼친 모습은 분명 고무적이었다.? ?
▶ 중원의 중심 기성용, 그리고 아직은 불완전한 플랜 A.
확실한 카드를 활용할 수 없을 때, 나머지 카드로 꾸릴 수 있는 플랜 B를 가동해보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점은 최강희호가 지금까지 내놓은 플랜 A가 얼마나 만족할 만한 완성도를 보였느냐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호주전은 기존 4-2-3-1의 완벽함을 기하기 위한 투자의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앞서 언급했듯 '프로팀과 달리 대표팀엔 시간이 없다. 감독의 철학이 경기력에 녹아들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현재 대표팀의 중원에서 '확정'됐다고 말할 만한 부분은 기성용의 존재와 기용 여부 정도다. 그외엔 아직 안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최종 예선 들어서 기성용의 파트너도 매번 테스트를 거듭하지 않았던가. 가장 최근 이란전에서는 박종우(후32분 하대성 교체)가, 우즈벡전에서는 하대성(후38분 윤빛가람 교체)이, 레바논전에서는 김정우가, 그리고 카타르전에서는 김두현이 뛰었다. 중요한 일전에서 매번 조합이 바뀐 것, 그만큼 확정된 라인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성용이 왔을 때 4-1-4-1 시스템에 끼워맞출 것인가. 그렇다면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보다는 한 명뿐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그의 자리가 될 텐데, 그러기엔 그가 갖춘 장점을 오롯이 발휘하기가 힘들어진다. 가장 먼저 파트너 없이 홀로 이 진영을 도맡을 땐 '수비적인 짐'이 확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두 중앙 미드필더가 상대의 측면 공격을 잡아준다는 가정 하에 측면 자체에 대한 커버 범위는 줄 수 있다 해도, 그전처럼 마음 놓고 패스를 하거나 공격 진영까지 올라가 슈팅을 날리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워진다.
▶ 기성용의 파트너 찾기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이럴 바엔 기존의 4-2-3-1을 유지한 상황에서? 기성용의 서브로 나설 선수를 찾음과 동시에 그의 파트너 찾기에 공을 들이는 건 어땠을까 싶다. 최종 예선 4라운드까지 기성용의 파트너가 모두 바뀌었는데, 그 중 최근 런던 올림픽에서 함께 동메달을 일궈낸 박종우가 그래도 ?호흡 면에서 괜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선수도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선수는 아니다. 특히 이번에 활용했던 4-1-4-1에서도 오히려 앞선에 어울릴 스타일이다. 실제로 소속팀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전형을 구사할 때, 김한윤을 밑에 받치고, 박종우는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곤 했다.
그렇다면 기성용의 짝으로 어울릴 만한 선수는 누가 있었느냐. 감독 고유 권한에 대한 침해로 여겨질까 조심스러운데, 팀 컬러가 똑같진 않지만 최강희 감독이 2009 K리그 우승, 2011 K리그 우승-ACL 준우승을 일궈내며 전북의 '닥공'을 하나의 브랜드로 키워가는 과정에서 살림꾼 역할을 했던 정훈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패스와 슈팅은 물론 조율 능력까지 보유한 기성용의 파트너로는 축구를 '잘' 하는 선수도 좋지만, '열심히' 하는 선수가 더 절실할 지도 모른다. 알론소의 케디라, 피를로의 가투소처럼 헌신적으로 많이 뛰면서 파트너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선수 말이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중원에 활용할 자원으로 황진성, 박종우, 하대성, 고명진, 이승기처럼 상당히 공격적인 선수들을 호출했다. 이미 유럽파를 제외하기로 한 상황에서 판을 바꿔 플랜 B를 가동하고자 했던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 명단이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결과론적인 이야기며, 내년 3월 최종 예선 일정에 들어가기 전 원정에서의 평가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그 때는 어떠한 조합을 들고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호주전에서'만' 시험할 수 있었던 것들을 놓친 듯해 여전히 아쉽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