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피에타'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은 온국민을 들썩이게 한 빅뉴스였다. 이를 통해 김기덕 감독의 작품 세계가 재조명을 받았고, 김 감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이란 사실을 입증했다. 베니스가 주목했던 여배우 조민수의 재발견도 성과였다.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에서의 입지를 한층 탄탄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은 의미있는 행보를 거듭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 김기덕 감독이 벗어던진 세 가지를 짚어봤다.
▶'감독 김기덕'에서 '인간 김기덕'으로
대중에게 김기덕 감독은 사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TV프로그램과 같은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편이 아니었고, 특유의 음침하고 어두운 작품 스타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부 관객도 있었다. 최근 3년간 은둔 생활을 하면서 김 감독은 대중과 더 멀어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 김기덕 감독은 완전히 달라졌다.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하고 '피에타'의 공식 행사 자리에 참석하는 등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최근엔 연말을 맞아 각종 영화 시상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행사가 끝나면 김기덕 감독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을 받곤 한다. 김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줘 눈길을 끌었다. '감독 김기덕'에서 '인간 김기덕'으로 대중과 한층 가까워진 셈이다.
▶후배 감독 장훈에 화해 제스처
과거 김기덕 감독은 후배 장훈 감독과 불화설에 휩싸였다. 이것은 김기덕 감독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는 영화다'의 연출을 맡았던 장훈 감독이 대형 투자배급사와 손을 잡고 떠나면서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최근 그런 장훈 감독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지난 7일 열린 제32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김기덕 감독은 "나는 영화를 하면서도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며 "이명세, 정지영 감독님 등의 영화를 가장 많이 기다린다. 그분들의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이 상은 '부러진 화살'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님에게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후배 감독들을 언급하면서 "장훈 감독의 다음 영화가 나오지 않는데 각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장훈 감독의 다음 영화를 빨리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후 세계적으로 우뚝 서면서 그간의 앙금을 모두 털어버렸다는 느낌을 줬다.
▶대형 배급사와 손잡는 모습 볼 수 있을까?
김기덕 감독은 대형 배급사 및 멀티플렉스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영화 '도둑들'을 언급하며 "기록을 위해 좌석점유율도 낮은데 극장을 차지하고 있는 그게 진짜 '도둑들' 아닌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편법과 독점을 통한 이런 불리한 게임에선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최근 대형 배급사와 함께 일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대형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언급하면서 "백성의 억울함을 말하는 영화가 극장 독점을 통해 영화인들을 억울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빠트리지 않았다.
"올해 1000만 영화가 두 편 탄생했는데 진심으로 축하한다. 영화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영화인들의 노력도 높이 산다"고 전제한 그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CJ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부문 대표와 함께 왔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어 "내게 작품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내 작품이 멀티플렉스 극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관씩만 차지한다면 함께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대형 배급사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김기덕 감독이 그들과 손을 잡을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