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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이승엽, 삼성의 출근시간을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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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일본 생활에 염증이 난 이승엽(36)은 친정 삼성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2003시즌을 끝으로 일본 정벌을 꿈꾸며 삼성을 떠난 지 8년 만에 고향 달구벌 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2시즌, 9년 만에 국내야구 무대에 섰다. 그는 목표 하나만 세웠다. 팀 우승. 2002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보고 싶었다. 그걸 위해 다른 개인 타이틀은 모두 포기해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홈런왕, 타격왕 등의 타이틀은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 대신 우승은 꼭 필요했다.

그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삼성은 내가 없는데도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아시아시리즈 3개 대회를 우승했다"면서 "이번 시즌을 앞두고 나만 새로 들어왔는데 우승을 못하면 이건 좀 이상한 거 같다"고 했다. 이승엽의 그런 걱정은 맞는 말이다. 천하의 이승엽이 추가됐는데 삼성이 국내 무대를 평정하지 못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삼성은 지난해 우승 전력에서 전력 누수가 없었다. 이승엽이 가세한 삼성은 더 강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생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한 두개가 아니다. '야구 모른다'는 얘기가 만고의 진리가 돼 있는 야구판에서 이승엽의 가세가 삼성에 독이 될 수도 있었다. 팀이 우승하는데 3할 타자 한명 보다는 10승 이상 할 수 있는 투수 한명이 낫다는 얘기도 있다.삼성은 올시즌 초반 기대이하의 경기력으로 출발이 나빴다. 이승엽이 가세한 타선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승엽은 3번 타순에서 3할 이상의 좋은 타격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했다.

그런데 4번 타자 최형우가 극도로 부진했다. 그리고 이승엽 바로 뒤에 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결론 끝에 최형우의 타순은 이승엽 보다 먼저 치거나 아니면 한 타자를 건너뛴 다음에 쳤다. 1번 타자 배영섭도 동반부진했고, 이승엽과 1루수 자리를 공유하기로 했던 채태인은 타격부진과 허리 부상이 겹치면서 부진이 시즌 내내 이어졌다. 최형우와 배영섭은 여름을 기점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이승엽은 "우리 삼성은 초반 부진하지만 끝에 웃을 것이다"라며 "삼성은 최강이다. 우리가 할 것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진했던 삼성은 7월초 1위로 치고 올라가 끝까지 내달렸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리고 SK를 제압하고 2연패를 차지했다. 이승엽은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1차전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쳤다. 6차전에선 3타점 3루타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또 첫 한국시리즈 MVP에 뽑혀 기쁨이 두배가 됐다. 기자단 유효 투표 71표 중 최다 47표를 받았다. 한국시리즈 2승 장원삼(10표)을 제쳤다.

그의 가세로 뻑뻑하던 삼성 팀 분위기에 윤활유가 돌기 시작했다. 이승엽은 실력 면에서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수준에 오른 '국민타자'다. 후배들이 그의 실력을 의심할 수 없다. 같이 뛰고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 신기해할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14년 후배 김상수는 어릴적 우상과 매일 함께 뛰고 경기하는게 꿈같다고 했다.

그런 이승엽은 뒤에서 폼잡지 않고 앞에서 모범을 보였다. 그는 평일 홈경기(오후 6시30분 시작)를 위해 가장 먼저 대구구장에 출근했다. 그의 출근시간은 일정했다. 평균적으로 12시10~15분 사이에 운동장에 도착했다. 팀의 훈련시작 시간이 2시50분임을 감안하면 다른 선수들보다 2시간 이상 먼저 경기를 준비했다.

이승엽은 나이로 따졌을 때 팀내 두번째다. 그런 고참이 가장 먼저 출근하자 후배들도 출근시간이 빨라졌다. 하나라도 옆에서 보고 배우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 그는 이름값이 떨어져 용품 후원이 부족한 후배들을 가장 먼저 챙겼다. 이승엽에겐 글러브, 방망이, 장갑 등 용품 후원이 풍족했다. 그걸 가장 필요로 하는 후배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이승엽에게 안 받아 본 선수가 없을 정도다.

후배들은 처음에 이승엽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높은 명성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썰렁한 농담을 갖고 다가갔다. 개그콘서트 같은 TV 개그프로그램에서 배운 걸 후배들과 얘기하면서 녹여 넣었다.

이승엽이 합류하기 전 삼성 구단은 타자군과 투수군의 왕래가 뜸했다. 가교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오자 스마일맨 안지만 같은 선수가 이승엽 옆에 기웃거렸다. 그러면서 타자와 투수가 한데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이승엽의 올해 연봉은 8억원(인센티브 3억원). 그는 8억원 이상의 돈값을 했다. 조만간 삼성은 이승엽과 재계약할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