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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4차전 주루 실수, 이승엽이 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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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언제나 야구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실력에 성실성, 겸손함까지 갖춘 최고의 선수로 각광 받았다. 특히 큰 경기에서 이름값을 해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야구인생에 기록될 만한 큰 실수를 했다.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서 외야 플라이 판단 미스를 해서 어이없게 주루사를 했다. 그 플레이로 상승세를 탈 수 있는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결국 삼성은 1대4로 패해 2연승 뒤 2연패를 당하며 우승 전선에 먹구름이 꼈다. 이승엽은 2002년 한국시리즈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극심한 타격부진 끝에 극적인 홈런으로 만회한 적은 있어도, 단순 부진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지금껏 딱히 없었다.

딴 사람도 아닌 이승엽이 이렇게 큰 경기서 그런 실수를 했으니 팬과 언론의 관심을 이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됐다. 그런 관심속에 출전한 경기에서는 '또 실수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잡게 마련이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공격 때는 찬스가 오지 않길 바라고, 수비 때는 타구가 오지 않기만을 기원하기 일쑤다. 그러다가 찬스가 왔을 때 실제로 적시타를 치지 못하거나 어려운 타구를 실수하게 되면 '멘붕(멘탈 붕괴)'의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승엽은 달랐다. 하루 쉬고 나온 5차전서 독하게 마음 먹고 나온 게 역력해 보이는 장면을 여러번 연출했다. 그가 부담감을 이겨낸 방법은 '기본에 충실하자'였다. 타석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스윙이 커질 수 있지만 이승엽은 '홈런타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도 짧게 스윙을 하며 안타를 뽑아냈다. 1회말 1사 1루서 우전안타로 1,3루의 찬스를 이었고, 3회말 1사후 우전안타로 추가점의 찬스를 만들었다. 특히 자신이 실수한 주루플레이에서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3회말 1사 1루서 최형우의 우전안타 때 짧은 안타라는 것을 확인하고 2루까지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타구를 끝까지 지켜봤다. SK 우익수 임 훈이 타구를 뒤로 빠뜨린 것을 확인하고는 그때부터 전력질주를 해 3루에 안착했다.

수비에서도 투지를 보였다. 2-1로 쫓긴 4회초 1사 1,2루서 2루수가 던진 악송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1루수는 본능적으로 베이스에 발을 붙이고 있으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승엽은 과감히 1루를 포기하고 공을 잡아내 실점의 위기를 넘긴 것. 게다가 2루주자가 홈을 뛸 것에 대비해 곧바로 일어나 홈으로 송구를 했다.

8회초 정근우의 1루측 파울볼도 끝까지 쫓아갔고 1루측 불펜으로 떨어지자 펜스에 올라타 잡으려고 점프까지 하는 의지를 보였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베테랑 선수가 투지를 보이니 후배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일.

이승엽은 자신의 실수로 패한 것을 투지와 실력으로 만회하며 5차전 승리를 이끌었다. 이승엽은 "중심타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한다면 프로가 아니다"라고 했다. SK 이호준에게 큰 깨달음을 준 말. 그리고 그것을 직접 보여줬다. '역시' 이승엽이었다. 잠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