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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SK 함정에 빠뜨린 '딜레이드 더블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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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1,3루만큼 좋은 찬스는 없다. 공격팀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작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퀴즈 사인을 내도 되고, 히트앤드런 작전도 가능하다. 무사나 1사일 경우에는 그냥 타자에 맡겨 희생플라이를 노려볼 수도 있다. 또 하나 자주 볼 수 있는 작전이 '딜레이드 더블 스틸(delayed double-steal)'이다. '딜레이드 스틸'을 주자가 2명일 때로 확장시킨 개념이 딜레이드 더블 스틸이다. 1,3루 상황에서 3루주자가 1루주자의 도루 시도를 보고, 포수의 송구가 2루로 가는 걸 확인한 후 뒤늦게 홈을 파고드는 것이니 '딜레이드'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딜레이드 스틸은 20세기초 메이저리그 신시내티의 밀러 허긴스가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상대 투수가 공을 던진 후 또는 포수가 투수에게 공을 되돌려 주는 순간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2루를 훔치며 딜레이드 스틸의 창시자가 됐다. 이후 1940~1950년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에디 스탱키가 딜레이드 스틸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보기 드문 기술이 돼버렸다. 어쨌든 딜레이드 더블 스틸 시 3루주자에게는 고도의 상황 판단 능력과 주루 센스가 요구된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7~2011년까지 SK는 1,3루 상황에서 다양한 플레이를 펼치며 작전 야구의 정수를 선보였는데, 이같은 딜레이드 더블 스틸을 애용했다. 1루주자가 2루 도루를 시도하면 상대 포수가 2루로 공을 던지는 틈을 노려 3루주자가 홈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사실 2루주자는 '바람잡이'일 뿐이고, 3루주자의 움직임이 키를 쥐게 된다. 이때 상대 수비진이 3루주자의 움직임을 보고 포수의 2루 송구를 투수가 커트하거나, 2루 커버를 들어간 야수가 1루주자의 태그를 포기하고 바로 홈이나 3루로 던지기도 하기 때문에 딜레이드 더블 스틸은 일종의 '모험'이다. 성공하면 상대의 기를 확실히 누를 수 있지만, 실패하면 경기를 완전히 망치게 된다.

SK는 0-2로 뒤지고 있던 4회초 동점까지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선두 3번 박재상과 4번 최 정의 연속 내야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들었다. 이어 4번 이호준이 우전적시타를 날려 1-2로 따라붙었다. 5번 박정권과 6번 김강민의 연속 땅볼로 상황은 2사 1,3루로 바뀌었다. 7번 박진만의 타석.

SK는 여기에서 작전을 걸었다. 볼카운트 2B2S에서 5구째 볼이 되는 순간 1루주자 김강민이 2루 도루를 시도했다. 그런데 삼성 키스톤 콤비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2루수 조동찬과 유격수 김상수 모두 김강민의 기습 도루를 바라보기만 했다. 삼성 포수 이지영은 상당히 빠르고 큰 팔스윙으로 2루 송구 모션을 취했지만, 공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지영이 공을 미트에서 빼내려는 순간 3루주자 이호준이 홈을 향해 스타트를 끊었다. 이를 발견한 이지영은 대신 3루수 박석민에게 던져 이호준을 협살에 들게 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던 이호준은 투수 윤성환에게 태그아웃을 당했다.

이호준이 포수 이지영의 손에서 공이 떠나지 않는걸 확인하고 뛰지 않았더라면 2사 2,3루가 됐을 순간이었다. SK로서는 후속타에 따라 동점 또는 역전을 노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결과에 땅을 쳐야 했다. 딜레이드 더블 스틸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그 슬픔은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삼성은 2루수와 유격수가 2루 커버를 들어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득이 됐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