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논란에서 사퇴까지, 양승호 감독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롯데 양승호 감독이 30일 전격 사퇴했다. 롯데 구단은 "양 감독이 24일 장병수 사장과의 만남에서 사퇴의사를 드러냈고 구단이 30일 최종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양 감독은 22일 SK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패한 후 사퇴논란에 휩싸였다. 경기 후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기 때문. 하지만 곧바로 "사퇴선언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23일 배재후 단장, 24일 장병수 사장과 만나 "사퇴는 없을 것이다. 내년 시즌 코칭스태프 인선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며 사퇴 논란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하지만 정확히 6일 후, 롯데는 양 감독이 사퇴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앞뒤가 안맞는 일이다. 양 감독을 신임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구단이 6일 만에 입장을 바꿨다. 공식입장은 이렇다. 양 감독이 배 단장과 장 사장에게 사퇴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구단은 일단 양 감독을 만류했다고 한다. 장 사장이 양 감독에게 "조금 더 생각해보라"라는 말을 했고 양 감독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지만 자신의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는게 구단측의 설명이다.
롯데가 설명한 6일은 아름다워 보인다. 감독이 성적에 책임을 지고 용단을 내렸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다. 올 시즌 초반부터 "올해 우승하지 못하면 양 감독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공식 계약기간은 3년이지만 사실상 '2+1'년 계약이라는 얘기도 기정사실화 됐다. 2년째 우승하지 못하면 나머지 1년 계약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때문에 사퇴논란 이후 6일은 롯데가 양 감독 경질 카드를 꺼내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고 보는게 맞다. 장 사장과의 만남 후 구단 수뇌부에 양 감독에 대한 보고가 올라갔고, 수뇌부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시간이다. 상하 보고체계가 철저한 롯데 그룹의 특성상 시즌 종료 직후 곧바로 경질 카드를 내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구단이 양 감독에게 "내년 시즌 코치 선임권을 부여했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형식적인' 절차였다. 롯데의 한 고위 관계자도 "지난 6일은 구단이 롯데의 미래를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한 시간"이라고 말해 사실상 경질임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이었을까. 문제는 아시아시리즈다. 롯데가 양 감독 경질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황에서 아시아시리즈 지휘봉을 양 감독에게 계속 맡긴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만약 롯데가 우승이라도 차지한다면 더욱 양 감독을 내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롯데가 급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양 감독은 롯데 감독으로 취임한 첫 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2위를 이끌었다. 올해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좋은 성과를 이어갔다. 하지만 팀이 바라는건 오직 우승이었다. 우승을 시키지 못하면 일찌감치 경질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꼴이 됐다. 롯데는 올시즌 이대호-장원준 차포를 떼고 시즌을 치렀다. 하지만 구단 내부에서는 "FA 영입에 60억원을 썼으면 지난해보다 무조건 좋은 성적이 나와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