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숨은 승부처가 있었다. 7회말 두산의 공격. 이원석이 첫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는 7회초 1-1 동점을 만든 후 김성배를 투입했다. 이원석이 친 타구가 2루 베이스를 거쳐 중견수쪽으로 빠져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유격수 문규현이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걷어냈고 한바퀴 돌며 1루에 송구, 이원석을 잡아냈다. 환상적인 수비였다. 롯데쪽으로 승기가 확실히 오는 장면이었다.
▶'7월의 사나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문규현에게 2011년은 잊을 수 없는 한해다. 처음 풀타임을 소화했다. 타율이 2할4푼2리에 그쳤지만 연봉은 100%나 인상됐다. 7월 맹활약 때문. 문규현이 4할 넘는 맹타를 터뜨리자 중하위권에서 허덕이던 롯데는 쭉쭉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양승호 감독이 "문규현 때문에 정규시즌 2위를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대단한 활약이었다.
그 때의 '미친' 모드가 올해 다시 한 번 발동되고 있다. 준플레이오프 1, 2차전 7타수 4안타를 터뜨렸다. 1차전 선취타점, 2차전 동점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선구안을 발휘하며 볼넷도 2개를 얻어냈다. 건실함을 자랑하던 수비는 화려함까지 더했다.
문규현은 2차전을 마친 후 "정규시즌에서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은 나에게 정말 간절한 무대였다. 1차전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뿐이었다.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며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시리즈를 준비했는지 설명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간절함이 그의 플레이에 그대로 묻어났다. 특히 타석에서의 문규현은 모든 롯데 타자들이 보고 배워야할 교과서 같았다. 유인구에 속지 않고 끝까지 공을 봤다. 코스에 따라 당겨치고, 밀어치는게 자유자재였다. 문규현은 "지난해 플레이오프를 치러본게 큰 도움이 됐다. 조급함을 버렸다. 끝까지 공을 보고, 투수를 괴롭힌다는 자세로 타격을 하자 좋은 밸런스가 잡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정규시즌에서는 왜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일까. 부상 때문이었다. 시즌 초 주자와 부딪히며 다리를 다쳐 꼬이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에는 가래톳과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문규현은 "변명같지만 부상 때문에 제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러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아팠다. '역시 실력이 부족한 선수', '지난해 반짝한 선수'라는 말을 들을 때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내 진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밝게 웃었다.
▶군산의 아들 "아버지, 감사합니다."
문규현이 부담감을 훌훌 털고, 준플레이오프에서 신나게 야구를 할 수 있었던 재밌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문규현은 몇달 전부터 올해 추석을 기다려왔다. 남들과 다르게 일터에서 일을 해야하는 프로 선수가 무슨 이유로 추석 연휴를 기다렸을까. KIA와의 원정 3연전이 운좋게도 군산에서 개최됐기 때문이다. 문규현은 군산 토박이다. 군산상고를 졸업한 후 롯데에 지명됐다. 이후 부산에서 혼자 지내며 가족과 생이별 해왔다. 올시즌도 마찬가지.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그런 문규현이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게 됐으니 본인도, 가족도 잔치 분위기였다고 한다. 아버지 뿐 아니라, 모든 친척이 군산구장에 나와 단체 응원을 벌였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팀 사정이 최악이었다. KIA와의 3연전을 모두 내준다면 4위 자리도 안심할 수 없었다. 가족들 앞에서 신나게 즐기며 야구를 할 수 없었다. 여기에 1, 2차전 모두에서 부진하자 부담감이 생겼다. 가족들은 "규현이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며 3차전 응원도 포기했다.
하지만 아버지 문시창씨는 아들 몰래 야구장을 홀로 찾았다. 잘하든, 못하든 한 번이라도 더 아들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롯데는 2안타를 몰아친 문규현의 활약을 앞세워 KIA를 꺾고 4강을 확정지었다. 문규현은 "나도, 팀도 후련해지는 경기였다. 고향에서, 그것도 아버지 앞에서 좋은 경기를 해 자신감이 생겼다. 그 좋은 기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차전 후, 무뚝뚝한 아버지 문씨는 평소 잘 하지 않던 전화를 아들에게 걸었다. 그리고 "잘했다"는 짧은 칭찬 한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