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패기'를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함, 두산 덕아웃에는 그 역할을 해줄 만한 '두목곰'이 없었다.
두산은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1차전에서 연장 10회 무사 1, 3루에 터진 황재균의 결승타로 인해 5대8로 재역전패를 당했다. 당초 두산 김진욱 감독이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말했던 대로 두산 선수단에는 '혈기'와 '패기'는 가득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이것을 순도높은 집중력으로 이어가는 노련미는 없었다.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해줄 만한 베테랑이 보이지 않았다. 새삼 '두목곰'이라고 불리는 김동주의 빈자리가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자멸할 뻔한 롯데를 살려준 운명의 7회말
사실상 롯데는 5회말 3개의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실책을 저지르며 역전을 허용했던 시점에 쓰러져야 했다. 그러나 이전의 롯데와 달리 선수들의 자신감과 도전의지는 덕아웃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록 실책을 저지른 장본인이었지만, 베테랑 조성환은 후배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동요하는 분위기를 막았다. 또 홍성흔이나 강민호 등 클럽하우스 리더들이 든든하게 투지를 지켜냈다.
결국 이로 인해 롯데는 휘청일망정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롯데 선수들에게 '아직 괜찮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전 뒤 추가점을 허용한 7회말, 두산 중심타선이었다. 1사 2루에서 오재원의 중전적시타로 5-3을 만든 두산은 계속해 1사 2루의 기회를 이어갔다. 적시타 한 개면 승부 쐐기를 박는 점수가 나오는 상황. 더군다나 롯데는 간판 포수 강민호가 수비 도중 공에 얼굴을 맞고 실려나간 때였다. 백업포수 용덕한이 들어왔으나 전반적으로 '불운'이 짙게 드리운 듯 했다.
그러나 이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두산 3번 김현수와 4번 윤석민은 각각 2루수 땅볼과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아웃카운트 2개가 허무하게 늘어나면서 롯데는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었고, 두산의 달아오르던 기세는 차가워졌다.
▶새삼 아쉬워지는 두목곰의 빈자리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김현수와 윤석민이 모두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빠른 승부를 펼쳤다는 점이다. 김현수는 초구 스트라이크-2구 볼-3구 파울로 볼카운트가 1B2S로 몰린 상황에서 롯데 투수 이명우의 4구째를 건드렸다.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아 결국 2루수 땅볼 아웃. 2루주자 오재원을 3루로 보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윤석민도 마찬가지다. 바뀐 투수 최대성을 상대로 초구 헛스윙-2구 파울-3구 볼에 이어 4구째에 다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두 선수 모두 팀의 중심타자로서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공격적이었다. '패기'가 끓어오르다못해 넘치고 만 경우다. 롯데가 흔들리고, 특히 배터리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타자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운 상황에서 모두 4구만에 승부를 건 점은 패기의 농도가 너무 짙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새삼 두목곰 김동주의 빈자리가 아쉬워진다. 김동주는 부상 등의 이유로 지난 8월 이래 두산 1군 클럽하우스에서 모습을 감췄다. 결국 이번 포스트시즌에 참가할 수 있을 만큼의 몸상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진욱 감독은 수많은 고심 끝에 김동주의 엔트리 제외를 결정하며 "김동주처럼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포스트시즌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주전으로 기용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동주의 역할이 반드시 '주전'이 돼야하는 것은 아니다. '두목곰'이라는 별명처럼 그 존재감 자체로도 두산 덕아웃에서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도 가능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1차전 7회말 1사 2루 시점에 김동주가 덕아웃에서 김현수나 윤석민에게 '두목곰'으로서 "서두르지 마라. 급한 건 쟤들이야"와 같은 충고를 해줬다면 어땠을까. '가정'은 금물이라고 하지만 김동주의 빈자리는 분명히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