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계절이다. 이런 날씨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높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진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영화다. 우리나라 개봉관에서 이탈리아 영화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이라 반가운데, 여행과 음악, 사랑과 우정이 어우러져 기대 이상의 다채로운 재미를 안겨준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음악영화와 로드무비가 섞인 작품이다.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 지방에 오랜 친구들로 구성된 재즈 밴드가 있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모인 이들이 재미 삼아 만든 모임이라 변변한 밴드 이름조차 없다. 말 그대로 무명 밴드인 것이다. 그렇게 생업을 이어가며 틈틈이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던 이들은 지역 음악축제에 참가할 멋진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 밴드의 리더 니콜라가 색다른 제안을 하나 한다. 해안에 있는 축제 장소에 걸어서 가자는 건데, 반대편 해안에서 축제가 열리는 곳까지 횡단을 하면서 길거리 공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밴드를 알리자는 것이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산길로 도보하면 열흘은 족히 걸린다는 게 함정. 그런데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멤버들은 모두 찬성을 한다. 그렇게 축제 열흘 전에 밴드는 길을 나선다.
그리고 지역방송국 기자 트로페아가 상사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밴드의 여행을 동행 취재하게 된다. 염세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지닌 트로페아의 눈에는 사서 고생하는 이들이 마냥 바보 같이 보인다. 그녀는 이들에게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횡단밴드>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은 뻥 뚫린 고속도로를 이용해 금방 갈 수 있는 곳을 열흘에 걸쳐 걸어간다. 짐을 실은 수레와 말까지 끌고 말이다. 숙식은 캠핑으로 해결하고, 딱 한 대만 갖고 온 휴대폰은 비상시에만 쓰기로 한다. 모든 게 편리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일부러 느리고 불편한 여행을 택한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잠시 멀리한 이들이 발견한 건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거대한 산맥과 넓은 강이 펼쳐진 이곳은 시간을 거스른 듯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장소다. 밴드가 횡단하는 지역은 선사시대 인간의 거주 발달 단계를 통틀어 볼 수 있는 곳으로, 아직도 굴에서 사는 주민들이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 쉬며 묵묵히 걷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평범한 가장과 뮤지션 사이에서 방황하던 니콜라는 음악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커다란지 깨닫게 되고, 애인을 잃고 몇 년째 말문을 닫았던 프랑코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입을 연다. 또 소심한 청년 살바토레는 포기했던 의사의 길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까칠한 트로페아는 밴드와 여행을 함께 하며 한결 부드러워진다.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당연하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개봉 날 3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던 영화는 곧바로 130여의 스크린으로 상영관이 늘었으며, 이후 215개관 까지 확장돼 남유럽 전체에서 7개월 동안이나 상영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영화가 이토록 히트를 친 이유는 틀에 박히지 않은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연출과 연기가 풋풋하고, 캐릭터와 상황들은 소박한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밴드의 음악은 기교는 없지만 은근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재즈를 기반으로 히피 감성을 더한 음악이 자유로운 매력을 준다.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인 가사도 인상적이다. 특히 엄마의 샌드위치에 관한 노래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깊게 느껴져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바실리카타의 해안에서 해안으로'라는 뜻의 원제목을 지닌 이 영화는 이탈리아 배우 로코 파팔레오가 직접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밴드의 리더 니콜라로 출연했다. 그의 고향이 바로 바실리카타인데, 파팔레오는 음악축제에 참가하러 떠난 밴드의 횡단여행을 통해 바실리카타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냈는데, 이 지역의 다양한 풍경과 음식, 와인 등을 아낌없이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바실리카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거칠지만 낭만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다. 한국 관객이 아는 얼굴도 한 명 안 나오고,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음악 장르를 다룬 영화도 아니지만 묘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삶에 치이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평온한 즐거움을 전해준다. 걷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아주 가끔은 자동차와 컴퓨터와 휴대폰을 뒤로 한 채 자연 속에서 느리게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정미래 객원기자, FILMON(http://film-on.kr)>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