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투혼은 불태웠다.'
3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한화-KIA전은 사실 그저그런 경기였다.
KIA가 전날 롯데전에 패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의 꿈이 완전히 무산된데다, 한화도 시즌 최하위를 일찌감치 결정했기 때문이다.
올시즌 농사를 사실상 마감한 양 팀 선수들로서도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승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9400여 대전 관중을 불러들인 숨은 이슈가 있었다. 한화의 베테랑 박찬호(39)다. 박찬호는 이날 올시즌 마지막 등판을 했다.
박찬호가 선수생활을 계속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날 등판은 야구팬들에게 역사적인 장면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대전구장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지난달 10일 부상으로 인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박찬호는 이날을 위해 23일 만에 1군 엔트리에 등록했다. 이른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박찬호의 이날 투혼은 빛났다. 하지만 결정적인 야수 실책으로 인해 아쉬움의 그림자가 더 컸다.
▶모양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만큼은 한화의 박찬호가 아니라, 박찬호의 한화라고 하고 싶다." 한용덕 감독대행은 이날 경기를 시작하기전 박찬호의 등판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 한 마디 말로 요약했다. 박찬호는 지난달 10일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으로 1군에서 빠진 뒤 허리 통증까지 얻었다. 두 가지 부상 모두 나이에 따른 만성 질환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기 때문인지 완쾌되지 않았다. 이날 등판도 사실 무리였다. 한 대행은 "박찬호의 몸 상태로 보면 선발 등판할 상태는 아닌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야구사의 역사적인 선수에게 모양빠지지 않게 멋있는 시즌 마무리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모양빠지지 않기'위해서였다. '모양빠지지 않는다(체면이나 자존심을 구기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행동수칙은 한 대행의 평소 소신이다. 박찬호에게 올시즌이 끝나기 전에 등판 기회를 주고 싶었던 한 대행은 불펜보다 선발을 선택했다. 몸상태로 보면 선발이 무리였지만 천하의 박찬호가 마지막 등판에서까지 선발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등판 날짜도 박찬호가 선택하도록 했다. 박찬호가 자신의 몸상태를 판단할 때 그나마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날을 잡도록 한 것이다.
▶팬을 위해 던졌다. 그러나 실책때문에…
한 대행은 이날 박찬호의 한계 피칭을 투구수 50개-3이닝 정도에 맞췄다. 시작은 좋았다. 1회 첫 상대 이용규를 플라이로 잡은 이후 김선빈에게 첫 안타를 허용했지만 연속 삼진을 잡았다. 2회 삼자범퇴를 하며 초반 위력을 이어나갔다. 3회 '커트 신공' 이용규에게 말려 10구째 승부를 벌이면서 투구수가 49개로 늘어나면서 한계에 이르는 듯했다. 송진우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예정대로 교체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송 코치는 그냥 돌아섰다. 한화가 초반 타선의 도움으로 2-0으로 앞서있던 터라 강판되더라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벤치의 주문이 있었다. "몸에 큰 무리가 없으면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던져다오." 박찬호는 이를 악물었다. 4회 나지완에게 동점 투런포를 맞았지만 투구수 63개 4탈삼진, 3안타, 2실점으로 잘 버텼다. 하지만 결정적인 야수 에러가 박찬호의 힘을 뺐다. 5회 1사 1루에서 나온 이용규의 2루수쪽 타구는 병살 플레이에 제격이었다. 하지만 2루수 하주석이 '알까기' 실책을 범하는 바람에 2, 3루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이는 김선빈의 희생플라이와 안치홍의 적시타로 이어지는 재앙이 됐다. 그래도 박찬호는 마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안타 맞고, 실점하는 걸 신경쓰지 말고 홈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벤치의 요청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결국 6회초 김상훈에게 추가 적시타를 허용한 뒤 투구수 92개로 마지막 피칭을 마감했고, 대전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의 퇴장을 축하했다. 대전=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