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길 LG 트윈스 단장의 표현대로 4~5월의 류현진을 보는 것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역투를 하고도, 잇따라 호투를 펼치고도, 승운이 따르지 않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외국인 투수 레다메스 리즈(29)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즌 초반 류현진은 거의 매경기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했는데도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번번이 승리를 놓쳤다. 류현진이 단 1점이라도 내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공격력이 좋은 팀의 선발 투수는 5이닝 동안 4~5실점을 하면서도 승리를 챙기는데, 6~7이닝을 1~2점으로 막아도 패전투수가 되니 그럴만도 했다.
그런데 요즘 리즈가 승리에 목이 탔던 전반기 류현진와 비슷한 처지다.
"타자들은 미안하지도 않나. 리즈가 저렇게 잘 던지는데."
18일 잠실구장에서 넥센전을 지켜보던 백 단장이 툭 던진 말이다. 리즈가 측은하게 느껴질만도 하다. 이날 넥센전에 앞서 선발 등판한 4경기에서 리즈는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지만, 승리없이 2패만 안았다. 지난달 17일 한화전에서 시즌 3승째를 거둔 후 한 달 동안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리즈의 최근 한 달 간 성적을 살펴보자. 8월 23일 KIA전에 선발 등판한 리즈는 6이닝을 2실점으로 막았고, 8월 31일 롯데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를 했다. 그러나 두 경기 모두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뒤이어 벌어진 9월 5일 삼성전에서 8이닝 1실점, 9월 12일 SK전에서 7이닝 3실점(1자책)을 기록했는데, 모두 패전투수가 됐다. 상위권 팀에 있었다면 2~3승까지 챙길 수도 있는 성적이다.
이쯤되면 타선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유독 리즈가 등판하는 날 침묵에 빠지니 말이다.
18일 넥센전도 그랬다. 5회까지 3안타 8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리즈는 6회 1실점한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시속 150km 중후반까지 찍은 직구가 위력적이었다. 이따금씩 섞어 던진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6이닝 1실점이면 선발투수로서 승리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셈인데, 결과는 시즌 12패. 이날 LG 타선은 넥센 선발 밴헤켄, 마무리 손승락에 막혀 1점도 뽑지 못했다.
올시즌 리즈처럼 극적으로 반전을 이룬 선수가 있을까. 시즌 초반과 이후 리즈의 기록을 살펴보면 눈을 한 번 비비고 봐야한다.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한 리즈는 단조로운 구위가 읽히고, 제구력이 흔들리면서 소방수가 아닌 방화범으로 전락했다. 4월 7경기에 출전했는데 평균자책점이 무려 13.50이었다.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던 리즈는 선발 투수로 전환한 뒤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7월 6경기에 나서 3패, 평균자책점 9.53으로 한때 흔들리기도 했지만 시즌 막판 위력을 찾았다.
최근 5경기에서 3패만 기록했는데, 평균자책점이 1.03이다. 35이닝 동안 탈삼진이 44개, 4사구가 16개다. 요즘 프로야구 8개 구단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 것 같다.
리즈도 마운드를 내려 올 때마다 허탈할 것 같다. 리즈는 "아무리 잘 던져줘도 올해 유난히 승리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아 사실 속상하다. 하지만 우리팀 야수들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야수들이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해)미안하다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서로 눈빛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리즈는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했다. 그는 "마무리에서 선발로 복귀해 부진했을 때 모두가 응원을 하고 격려해 줬다. 그 덕분에 지금같은 구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출신인 리즈는 비교적 험상은(?)얼굴과는 달리 순둥이다. 차명석 투수코치는 "워낙 착하고 순박해 안 좋을 때도 쉽게 질책을 할 수가 없었다. 야단을 치면 금방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리즈에게는 격려가 동기부여가 된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한국 정서도 잘 알고 있는 리즈다. LG 관계자에 따르면 잠실구장 복도에서 마주치면 살짝 길을 비켜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