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리그(2군리그) 소속 경찰청은 그저 그런 '2인자'였다.
군 팀의 대부격인 상무의 그늘에 가렸다. 선수들은 군 생활과 함께 K-리그 경쟁을 병행하며 기량을 이어갈 수 있는 상무를 선호했다. 구단들의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이왕지사 경쟁력 있는 무대를 통해 실력을 키워가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한정된 자리를 모두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찰청은 상무행이 좌절된 이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었다. 양질의 스쿼드를 갖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청이 차지할 수 있는 위치는 하위권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두현 정의도 등 수준급 K-리거들의 입대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염기훈과 김영후 양동현 같은 준척급 선수들이 입대를 자원했다. 축구계에서는 경찰청을 두고 준프로급 전력을 갖추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올 시즌을 앞둔 경찰청 앞에 '레알'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이 김두현과 염기훈을 발탁하면서 사상 첫 경찰청 출신 국가대표가 탄생하기도 했다. 숱한 이슈를 뿌렸던 경찰청은 지난 10일 FC서울과의 R-리그 A조 최종전에서 3대2 승리를 거두면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2001년 R-리그 참가를 결정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 무대를 밟았다. 번듯한 우승컵 하나 주어지지 않는 '그들만의 우승'이지만, 최하위를 전전하던 '그냥 거쳐가는 팀'이 쓴 새로운 역사다.
앞으로도 K-리거들의 '경찰청 바라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상무가 스플릿시스템 그룹B 성적과 관계없이 강등 확정에 반발해 리그 잔여경기 참가를 거부하고 다음 시즌부터 아마추어로 내려가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판도에 변화가 왔다. 내심 상무 입대 지원을 계획하고 있던 선수들이 경찰청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다. 부산 아이파크의 김창수(27)는 "동기생들 중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이 꽤 많은데, 경찰청 입대 등 여러가지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부터 K-리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경찰청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