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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강행 원칙고수, 과연 '최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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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경기 강행, 꼭 해야만 했을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8월 중순 잔여경기 일정을 편성한 뒤로 웬만하면 경기를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의 우천취소가 나오면 포스트시즌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런데 13일 열릴 예정이던 잠실과 대전, 광주 경기는 모두 우천 취소됐다. KBO의 신념을 꺾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던 것. 문제는 넥센-두산전이 예정된 목동구장이었다. 오후 3시 경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그러나 비는 오후 4시반을 기점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정규시즌 때였다면 일찌감치 취소될 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유남호 경기감독관은 끝내 경기를 취소하지 않았다.

KBO의 원칙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남는다. 모든 주체에게 그다지 남을 것이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텅 빈 관중석, 긴장 풀린 선수단

오후 4시 반의 목동구장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불과 30여 분 전까지 장대처럼 퍼붓던 비는 순하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라운드는 흠뻑 젖은 채였다.

평소 이 시간대 쯤이면 이미 꽤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연습장면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4시반, 비가 퍼붓는 관중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비가 언제 그칠 지 모르는 상황이라 대다수 팬들이 예매를 취소하고, 경기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양팀 선수단도 '우천취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경기전 반드시 해야하는 연습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비가 잠잠해진 오후 5시 이후에 원정팀 두산만이 잠깐동안 그라운드에서 가벼운 펑고와 배팅 연습을 했다. 두 팀 감독은 하나같이 "오늘같은 날에 경기를 하면 부상이 가장 우려된다. 미끄러운 인조잔디 구장이라 더 다칠 위험이 크다"고 걱정했다.

▶우천 속 강행 후유증, 속출한 미스 플레이

그러나 KBO의 원칙은 결국 지켜졌다. 유 감독관은 인공위성 사진까지 보며 우천 상황을 주시하다가 결국 경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오후 6시30분. 플레이볼이 선언되자 양팀 선수들은 평소처럼 그라운드에 나섰다. 관중석에서는 비가 그친 후 입장한 극히 소수의 관중들이 외로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열려서인지 선수들의 몸놀림은 평소와 달랐다. 무겁고, 굼떴다. 집중력도 크게 떨어져 있었다. 양팀 선발 나이트와 김선우는 초반 제구에 애를 먹었다. 1회에만 나란히 2실점했다. 또 두산 베테랑 임재철은 9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지만, 1회말 수비 때 송구를 하다 어깨 근육에 통증이 생겨 곧바로 2회초 대타로 바뀌었다. 워밍업이 부족한 탓.

넥센 간판스타인 강정호도 본헤드 플레이를 했다. 2-2로 맞선 1회말 1사 때 2루주자로 나가있던 강정호는 6번 오 윤의 평범한 우익수 뜬공 때 터벅터벅 3루로 뛰었다가 결국 아웃됐다. 집중력 저하로 아웃카운트를 어이없이 착각한 것이다.

이날 공식 집계된 입장관중수는 1562명. 올해 목동구장 평균 입장관중수 9469의 16.5% 밖에 안되는 숫자다. 더불어 올 시즌 8개구장 최저관중수이기도 하다. 종전 최소관중은 지난 6일 광주 KIA-SK전 때의 2157명이었다.

이렇듯 선수들에게도, 그리고 관중들에게도 썩 유쾌한 경기가 아니었다. 더불어 올해 '700만 관중 돌파'를 꿈꾸는 KBO의 입장에서도 관중 흥행에 큰 타격을 입은 매치로 기억될 경기였다. 때문에 향후 또 경기 전 비가 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무조건 원칙을 고수하기보다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방법'를 더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