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던 은오(이준기)가 깨어나 직면한 상황은 아랑(신민아)이 자신이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을 동안 주왈(연우진)과 함께 있었다는 것과, 어떻게 된 고을이 사또를 호구로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엔 최대감(김용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게 최대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상식적인 상황은 불의를 참고 살던 은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각성을 가져왔고, 그렇게 사또 일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던 은오는 관복을 찾아 입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뿔뿔이 흩어졌던 이 드라마의 이야기들이 이제서야 하나로 모이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랑사또전>의 반응이 영 뜨뜨미지근한 이유는 1~2회에서 보여줬던 깔끔함, 속도감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몰아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스피디했던 전개가, 빠른 흐름 속 힘차게 움직였던 캐릭터들이 몇 주째 주춤주춤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음산한 음악과 함께 심각해지던 분위기가 자연스레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지 않고 그냥 툭 끊기고, 뭔가 이렇게까지 상냥하고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될 법한 장면이 길게 이어지기도 하며, 코믹 감초 역할을 기대했던 삼방과 돌쇠-방울 캐릭터는 종종 맥을 끊고, 주인공 아랑과 은오는 각각 "영감탱이", "기억상실증"만 반복 재생하고 있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판타지 로맨스 어드벤처 활극'을 지향했고, 거기에 추리까지 얹었지만 어째 여러 마리의 토끼들을 몰고 또 잡는 것이 무리인 듯싶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집중이 안 되는 것이 당연지사. 분명 1~2회는 정말 좋았어서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게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더랬다. 3~4회까지도 프롤로그라 생각하니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5~6회부터 좀 쳐진다 싶더니 7회에서 동굴을 지나 아주 그냥 먼 강을 건너버린 느낌. 그나마 8회에서는 조금 수습하려는 리액션이 보이긴 했는데 솔직히 지금까지의 페이스 조절을 보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다음 주면 어느덧 딱 절반을 온 건데 풀린 얘기가 아직까지 거의 없다. 판타지는 그럴싸한 CG가 그럭저럭 충족시켜주지만, 로맨스는 뭐 어찌 저찌 하여 삼각 구도 그림은 나오고 있다고 치더라도, 어드벤처는 예고만 8회째, 활극 역시 2회 정도까지였던 듯싶고, 추리는 역시 실종 상태다. 뭔가 거대한 것이 흑막에 가려져 있다는 식으로 밑밥은 깔고 있지만 실루엣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채 꽁꽁 싸매고 그저 빙빙 돌고 있는 느낌.
대체 뭐가 문제일까.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지금 <아랑사또전>이 딱 그렇다. 어드벤처와 추리를 위한 떡밥들은 풍년인데 그 많은 떡밥들이 하나도 수확되지가 않는다. 그저 흩뿌리기만 한다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태껏 뿌려진 떡밥들을 정리해가면서 또 다른 것들을 풀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스토리가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 이건 뭐 ABCD 순이 아니라 점점 AHDF 순이 되어가는 느낌. 보는 사람과 쓰고 만드는 사람의 속도 체감에 있는 듯한 갭이나, 감각적인 대사의 부재는 이 다음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캐릭터들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굴러 가게 만드는 게 급선무 아닐까.
첫인상이 좋아 기대한 것도 크고, 캐릭터들을 흥미롭게 살릴 좋은 배우들과 원래 하려던 이야기 소스 자체가 신선하고 좋았는데 자꾸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아쉽다. 부디 초반의 설렘을 설레발로 민망하게 만들지 말아주시기를. 보란 듯이 다시 재미있게 RISE 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젠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 내지는 '쉼표'가 필요한 타이밍. 그 많고 많은 떡밥들의 일정량을 수확할 때가 되었다. <토오루 객원기자, 暎芽 (http://jolacandy.blog.me/)>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