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또 다시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이번엔 안방에서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사극이 강세다. 작품성이나 파급력 면에서 어느 하나 뒤지는 작품이 없다. 작품 갯수 또한 어느 때보다 많다.
상반기에 큰 인기를 모은 MBC '해를 품은 달'을 필두로 한동안 안방극장의 사극은 판타지에 빠져 있었다. '해를 품은 달'은 무속 판타지를 내세웠고, MBC '닥터 진'은 구한말 조선으로 거슬러 가게 된 외과의사가 주인공이다. 시간여행 설정을 가미해 사극과 현대극을 절반씩 버무린 tvN '인현왕후의 남자'도 인기를 끌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아랑사또전'과 SBS '신의'도 이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아랑사또전'은 전생의 기억을 잃은 처녀귀신과 귀신을 볼 줄 아는 사또가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신의'는 고려시대 무사와 현대 여의사의 로맨스, 그리고 이들이 진정한 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작품 모두 판타지 설정을 매끄럽게 그려내기 위해 화려한 CG가 동원됐다.
판타지 단물이 점점 빠져가는 하반기엔 정통사극이 대거 몰려온다. 스타 작가와 감독이 투입되고 100억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들이다.
9월 초 KBS1 '대왕의 꿈'이 그 포문을 연다. 지난 4월 종영한 '광개토태왕' 이후 5개월만에 선보이는 대하사극으로, 백제(근초고왕)-고구려(광개토태왕)-신라(대왕의 꿈)를 잇는 삼국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총 80부작에 제작비는 120억원. 김춘추와 김유신의 삼한통일 과정을 다룬다. '사극 흥행의 보증수표' 최수종의 존재감이 믿음직스럽다.
10월 초에는 MBC '마의'가 출격한다. '허준' '대장금' '이산' '동이'를 연출한 '사극의 거장' 이병훈 감독의 신작. 말을 고치는 수의사 마의로 출발해 왕을 고치는 어의가 된 실존인물 백광현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심오한 의학세계를 그린다. '이산' '동이'를 집필한 김이영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승우와 '선덕여왕'의 이요원을 비롯해 손창민, 이상우, 유선, 이순재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세트 제작비만 무려 60억원, 총 50부작이다. 월화극 1위 '골든타임'을 이어받아 동시간대 '신의'와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신의'엔 '명콤비' 김종학 감독-송지나 작가가 버티고 있다. 두 명장의 '사극전쟁'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10월 방송될 예정인 SBS '대풍수'는 드라마적 상상력을 풍성하게 가미했다. 국운이 쇄한 고려말 권력 주변부에 있던 풍수지리학자들이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를 그린 팩션 사극이다. 지진희, 송창의, 지성, 김소연 등이 나선다. 제작비와 캐스팅 문제 등으로 제작이 지연되던 끝에 36부작으로 손질해 마침내 제작에 착수했다. 그래도 제작비는 무려 100억원대다.
극장가에선 이미 사극 열풍이 한껏 달궈졌다.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노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지난 8일 개봉했고, 코미디 연기의 달인 차태현의 첫 사극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일 만에 400만 관객을 가뿐히 넘겼다. 9월 개봉하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 광해군 8년 독살 위기에 놓인 왕 광해를 대신해 천민 하선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주연으로,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다.
최근에 제작된 안방극장 사극 중엔 '해를 품은 달'이 최고 시청률 42.2%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영화 쪽에선 지난 해 747만 관객을 동원해 최고흥행작이 된 '최종병기 활'이 있다. 하반기 사극대전에서 왕좌를 차지할 작품은 무엇일지, 미리 점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