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스타 시즌1의 탑3까지 올랐던 백아연의 데뷔가 결정되었습니다. 소속사는 관련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기 시작했고,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그녀의 자필 편지로 데뷔를 앞둔 심정을 팬들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이 조금씩 가요계를 점령해가고 있는 흐름 속에서, 아이돌 위주의 기획력과 오디션 얼개의 결합을 통해 생존을 노린 대형 기획사의 첫 번째 시도인 셈이죠. 그녀의 등장을 단순히 새로운 여자 솔로 가수의 데뷔로 보기에는 남다른 의미와 관심을 부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급작스럽습니다. SBS가 시즌2를 예고하며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송을 하도 많이 봐서 착각하거나 잊어버리기 쉽지만, 백아연이 출연했던 K팝스타 시즌 1이 종료된 것은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친 인재 중에서 이런 단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데뷔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빠른 데뷔 앨범을 들고 나온 버스커버스커는 이미 장범준의 풍부한 자작곡들 소스를 보유하고 있었고, 홍대를 비롯한 공연 경력을 가지고 있던 준비된 재원이었습니다. 곧이어 활동을 개시한 울랄라세션 역시도 이미 프로의 경력을 쌓았던 오디션계의 사기 캐릭이었죠. 그에 비하면 이제 연습생 단계에 들어선 백아연의 데뷔는 분명 이례적이고 빠릅니다. 게다가 그녀의 소속사가 JYP라면 더욱 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어요.
JYP는 다른 어떤 아이돌 기획사보다도 연습생들의 긴 준비기간을 요구하는 회사입니다. 물론 원더걸스의 데뷔 직전에 합류한 예은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 회사를 거친 대부분 가수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대중 앞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소속사의 말처럼 그녀에게 딱 맞는 곡이 나왔기에 데뷔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들어준다고 해도, 아이돌 최장기 연습생 기록을 가진 조권의 2AM이 데뷔곡 '이 노래'가 결정된 뒤에도 엄청난 준비기간을 또 다시 가져야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백아연의 데뷔에는 그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JYP 내부의 여러 사정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요계의 전체 구도와 회사 내의 전략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 그냥 불쑥 가수들의 데뷔와 복귀를 결정한다면 오히려 그런 소속사야말로 무능한 것일 테니까요.
우선 지금의 JYP는 이슈메이킹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입니다. 2012년은 그야말로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으니까요. 박진영이 전면에 나서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드림하이 시즌2'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띄우려고 시도했던 신인 듀오 JJ프로젝트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데뷔 활동을 마무리했죠. 박진영의 영화배우 도전도 초라한 흥행결과와 함께 박진영 자신의 시장 가치마저 하락시켰고 그의 솔로활동 역시도 더 이상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한 체 밋밋하게 끝났습니다. 2PM은 닉쿤의 음주운전 사고로 발목이 잡혔고, 원더걸스는 미국진출 이후 예전의 위광을 좀처럼 찾지 못합니다. 조권과 우영의 솔로활동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나마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수지를 필두로 한 미스에이 정도가 자기 몫을 해주고 있지만 3대 기획사로 불릴 만큼의 성과로 보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한 해였어요. JYP nation을 앞세우며 위용을 과시하려 했지만 그 파급력 역시 미미합니다.
반면 경쟁자들의 행보는 눈부시다 못해 위협적입니다. SM은 기존의 아이돌 라인업에 강호동과 신동엽을 품에 안으며 방송사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쥐었습니다. 소녀시대는 태티서 유닛 활동으로 건재함을 과시했고, 샤이니와 F(X) 역시 활동 기간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힘을 보여주었죠. 일찌감치 타블로와 싸이를 영입하며 아이돌 위주의 전력에서 탈피를 시도한 YG는 강제 해외진출의 위엄을 보여준 강남남자 싸이의 대박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2NE1의 파급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국민 오락부장의 귀환을 알린 강남스타일은 그 모든 아쉬움을 덮을 만큼의 대박이었죠.
이것은 단기적인 성공과 실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JYP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의 질과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거든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슈메이커로 내세울만한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다른 한 편으로는 연예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또 다른 축인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기획사의 힘은 재능들을 적절한 분야에 걸맞게 올바로 성장시키고, 그들의 매력을 최적화시키는 기획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주 공장 생산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과잉의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소속 가수들에게 활동하고 방송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줄 수 있느냐의 여부가 더욱 더 중요한 시대인 것이죠. 그리고 그 힘은 이른바 끼워 넣기가 가능할 정도의 거물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JYP는 서서히 다른 두 라이벌에 비해 힘이 빠지고 있는 형편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백아연이 나왔습니다. K팝스타 시즌2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녀의 행보는 하나하나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대상이 될 것이고, 병마와 싸워 이긴 성장 스토리와 오디션을 거친 그녀 개인의 드라마는 그만큼 이야기할 수 있는 꺼리가 많습니다. 좋은 선곡과 착실한 준비를 토대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만 있다면 SM과 YG로 쏠려있는 균형의 추를 조금이나마 JYP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핀치에 서서히 몰리고 있는 JYP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한 수. 백아연의 서두른 데뷔의 배경엔 바로 이런 각 기획사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권력관계가 숨어있다고 생각해요.
겨우 20대 여성 솔로 가수의 데뷔를 뭐 그리 심각하게 보냐구요? 물론 대중의 입장에서야 그저 좋은 여자 솔로 가수가 한 명 더 느는 것이면 좋을 것이고, K팝스타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주면서 보다 많은 재야의 고수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멍하니 화려하게만 빛나는 무대 위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보단 그 이면에 있는 치열한 경쟁까지 함께 보는 것도 TV 속 요지경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이해와 고민이 그들의 의도대로만 소비하고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방송, 음악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구요.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요구하는 것이 보다 다양하고 발전하는 음악과 방송을 즐길 수 있게 해줄 힘이 되어 줄 테니까요.
물론 그 무엇보다도 백아연 양의 데뷔를 축하합니다. 이 이면의 복잡한 계산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데뷔는 아이돌 천지의 가요계에 식상함을 느낀 대중들이 슈퍼스타K를 위시한 오디션 출신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변화의 영향이고, 그런 흐름이 대형 기획사들을 움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제2의 백아연, 버스커버스커와 같은 좀 더 많은, 다양한 재능들을 보고 싶다면 바로 이렇게 알고, 고민하고, 원하고, 요구해야하지 않을까요? <김대용 객원기자, 들까마귀 통로(http://raven13.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