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1번타자가 제 자리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역할은 해내고 싶어요."
LG 오지환은 아직 '미완성된' 선수다. 공수 모두 마찬가지다. 방망이는 프로 4년차인 아직까지도 가진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격수로서 수비도 아직 아쉬운 면이 많다.
이는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 오지환은 3일 현재 삼진 110개로 이 부문 1위다. 2위인 롯데 전준우(92개)와는 18개나 차이가 난다. 실책 역시 23개로 1위다. 공동 2위를 형성하고 있는 5명(김상수 문규현 황재균 김선빈 이대수)이 12개를 범했는데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시즌 초반 좋았던 수비, 왜 '반짝 변신'에 그쳤나?
오지환을 언급할 때마다 '삼진왕', '실책왕'이라는 오명이 따라붙는 이유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을 비롯한 LG 코칭스태프는 변함없이 그에게 신뢰를 보낸다. 오지환은 반드시 키워야 할 선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훈련 때부터 타격과 수비, 두 파트의 코치가 오지환을 집중 지도했다. 수비의 경우 유지현 코치와 지옥의 펑고 훈련을 했다. 하루 1000개라는 어마어마한 공을 받아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시즌 초반엔 효과가 나타나는 듯 했다. 오지환의 수비는 포구부터 송구까지 몰라보게 매끄러워졌다. 어딘가 뻑뻑해 보이는 전과 달랐다. 게다가 손이 아닌, 발로 타구를 잡아내는 걸 조금씩 깨닫는 듯 했다. 타구가 글러브에 부딪히는 느낌은 사라졌고, 부드럽게 타구를 품에 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시즌을 치를 수록 좋은 모습보다는 과거의 나쁜 습관이 되풀이됐다. 이는 오지환의 성격 탓이었다. 유지현 수비코치는 전지훈련 때부터 "지환이는 원래 성격이 급하다. 그래서 평소 생활습관부터 바꾸려 했다. 훈련 외 시간에도 여유를 갖는 걸 강조했다"고 말해왔다. 시즌을 치르면서 포구 시부터 마음은 벌써 1루에 가있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직구 못치는 오지환, "스스로에게 한심했다"
오지환을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만든 건 바로 맞지 않는 방망이 때문이었다. 오지환은 최근 들어 수비가 좋아진 데 대해 "타석에서 잘 맞기 시작한 뒤 수비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공격에 대한 부담감이 수비에 있어 조급증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오지환은 강한 손목 힘에 의존한 타격을 해왔다. 장타력에 기대를 거는 스윙. 하지만 이 스윙이 일정치 못한 게 문제였다. 어쩌다 배트 중심에 맞기라도 하면 쭉쭉 뻗어나가지만, 분명 확률이 낮은 타자였던 것이다. 1군 멤버로 발돋움한 2010년에도 오지환은 타율 2할4푼1리에 13홈런 61타점으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삼진왕(137개)의 오명을 함께 얻었다.
LG가 오지환을 주전 유격수로 키우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지환이 장타에 대한 재능을 갖고 있기에, 공수에 걸친 잠재력만 끌어낸다면 대형 유격수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선 오지환의 스윙을 고쳐야 했다.
오지환은 유독 직구에 헛스윙하는 비율이 높았다. 일반적으로 직구를 잘 치고, 변화구에 약한 다른 타자들과는 정반대였다. 일정치 못한 스윙 궤도 탓에 어정쩡하게 헛스윙하는 일이 많았다.
오지환은 "솔직히 스스로에게 한심했다. 타자가 직구를 못 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타격 훈련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훈련 때도 직구에 타이밍이 늦는 일이 많았다.
▶오지환을 바꿔놓은 1번타자 기용, "이젠 공포의 2할5푼 타자!"
후반기 들어 1번타자로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1번타자의 최고 덕목은 바로 출루. 오지환도 출루를 우선순위로 두다 보니 조금씩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었다. 과거에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장타를 위해 힘껏 휘두르던 모습을 버리고, 타석에서 공을 좀더 오래 보게 됐다. 또한 보다 컨택트에 비중을 둔 스윙을 하고 있다.
이젠 삼진을 먹어도 배트 타이밍이 늦거나 어이없게 헛스윙하는 일은 없다. 오지환은 이를 두고 "홈플레이트 앞에서 삼진을 먹으면 괜찮다. 하지만 뒤에서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설명했다. 간단히 앞뒤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그동안 그가 가진 문제점이 뭐였는지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김기태 감독의 '1번타자 오지환' 전략이 여러모로 성공한 모양새다. 팀에 확실한 톱타자가 사라지면서 궁여지책으로 오지환을 선택했지만, 이는 오지환 개인의 성장을 위한 측면도 있었다.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훌륭한 '처방전'이 됐다.
오지환은 기록을 꼼꼼히 보지 않는 편이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타율을 체크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아예 무관심한 선수도 있다. 오지환은 후자다. 기록에 연연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최근 삼진 기록을 보고 새삼 놀랐다. 고작 두 시즌을 풀로 뛰었음에도 통산 삼진이 벌써 300개가 넘은 것이다.
이토록 많은 삼진을 기록했지만, 오지환에겐 여유가 생겼다. "1번타자로 나선 뒤 출루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요즘엔 2B, 3B 상황에서도 공을 한 개라도 더 보려고 한다. 요즘엔 삼진도 풀카운트 때 먹은 게 많다"며 웃었다.
오지환에게 1번타자가 좋은 이유는 바로 '타석에 많이 설 수 있어서'다. 남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치고 경험하고 싶단다. 올해 목표는 데뷔 첫 100안타-20도루. 이왕 1번타자로 변신했으니 그 역할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3일까지 오지환은 타율 2할4푼9리 95안타 12홈런 48타점 18도루를 기록중이다. 조만간 무난히 100안타-20도루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얼마 전 목표였던 '공포의 2할4푼 타자'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냐고. 그에게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1번타자가 제 자리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공포의 2할5푼 타자로 불러주세요!"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