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27)이 프랑스 리그1에서 활약하던 2009년이었다. 서울 명동에서 진행된 한 스포츠용품 업체의 팬 미팅 행사에서 박주영은 '롤모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윽고 답이 나왔다. "사뮈엘 에투나 사비 에르난데스 같은 선수들은 기술과 개인기가 뛰어나다. 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둘 다 FC바르셀로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다.박주영에게 스페인은 언젠가 밟아보고자 한 꿈의 무대였다. 3년이 지난 2012년 현재, 박주영은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세군다리가(2부리그)에서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한 셀타비고행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과연 스페인에서 박주영은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까.
▶스페인, 왜 아시아 선수의 무덤이었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아시아 선수들의 '무덤'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박지성(31·QPR)과 이청용(24·볼턴)이, 독일 분데스리가는 '갈색 폭격기' 차범근(58)이 승승장구 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도 나카타 히데토시(35)가 맹활약 하면서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독 프리메라리가에서는 성공한 아시아 출신 선수가 없었다. 이천수와 양동현(이상 한국)을 비롯해 조 쇼지와 오쿠보 요시토, 니시자와 아키노리, 나카무라 스케(이상 일본) 모두 실패를 맛봤다. 자바드 네쿠남과 마수드 쇼자에이(이상 이란)는 중위권인 오사수나에서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활약은 평범했다. 아시아 최초로 유럽(스페인)에서 뛴 파울리노 알칸타라(필리핀)가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다. 하지만 스페인 출신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데다, 이후 스페인으로 귀화해 정통 아시아선수로 보기 힘들다.
개인기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게 아시아 선수들의 패인이었다.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기는 여전히 숙제다. 스페인은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극대화 하면서도 조직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유로2008과 유로2012,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 대표팀에서 특징이 잘 드러났다.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모두 출중한 개인기를 갖추고 있어 임기응변에 능하다. 평균 체격은 밀리지만, 충분히 커버가 된다. 팀에 녹아드는 조직력 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다.
▶박주영, 성공가능성은 충분하다
프리메라리가는 EPL보다는 프랑스 리그1 스타일에 가깝다. 파워보다는 정교함을 추구한다. 리그1의 수준이 프리메라리가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은 분명하지만, 평균 이상의 아프리카 선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개인기와 스피드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모나코 시절 박주영은 전방에서의 위치 선정과 침투능력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각급 대표팀과 FC서울에서 보여준 모습도 이와 비슷했다.
선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분포와 팀 컬러, 리그 스타일 등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 팀 컬러는 자연스럽게 박주영에게 맞춰질 것 같다. 셀타비고는 아스널에 100만파운드(약 19억원)의 임대료를 제시하면서 1년 임대를 제안했다. 빠듯한 예산 탓에 선수 대부분을 스페인 출신으로 채운 팀 사정을 감안하면 얼마나 간절하게 박주영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파코 에레라 감독이 추구하는 색깔까지 지우기는 힘들지만, 박주영이 중심이 된 전술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시즌 세군다리가서 23골을 터뜨렸던 라고 아스파스(스페인)가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만큼, 초반부터 중용될 것이다. 전체적인 리그 수비 스타일도 힘에서는 EPL보다 다소 처진다. 박주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충분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아스널에서 한 시즌을 통째로 쉬다시피 하면서 리그1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자신감을 잃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통해 아픔을 일정 부분 치유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스널에서의 실패는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좋았던 시절을 기억해 내는 것이 과제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