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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미친 '괴짜', 기적을 꿈꾸다. 고양 허 민 구단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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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야구부 출신인데요."

대학 전공을 물어보자 대뜸 야구 얘기부터 꺼낸다. 하긴 얼마나 야구가 좋았으면 세계 최초로 야구 온라인게임인 '신야구'를 만들고 있었을까. 사실 처음에는 '신야구'를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계획된 '코멘트'인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얘기를 듣고보니 정말 야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신야구'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누다 유저의 입장에서 몇가지 바라는 점을 털어놓자 "게임에 꼭 반영해보도록 하겠다"며 진지하게 메모까지 했다.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허 민 구단주(36)가 게임사 네오플에서 '신야구'를 만들고 있었던 지난 2005년, 처음으로 허 구단주를 만났을 때의 얘기다. 서울대 응용화학과 재학 당시 서울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지낸 특이한 이력으로 얘기를 풀어나가고자 했으나, 허 구단주는 학생회장 출신보다는 서울대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했던 경험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알고보니 부산중고에서 야구 선수로 뛰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었다.

전형적인 '베이스볼 키즈'라 할 수 있는 허 구단주가 최근 일련의 '파격적 행보'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개념도 낯선 독립야구단을 만들더니,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혀 이쪽저쪽에서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줬다. 그러더니 최근 4명의 선수를 연이어 프로구단으로 보냈다. 당연히 팀에선 주전이지만, 아무런 조건없이 기꺼이 길을 열어줬다. 돈 한푼 받지 않았지만 프로선수를 배출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창단 목적을 달성했다며 싱글벙글이다.

그러더니 지난 29일 한화 한대화 감독의 낙마 직후 김 감독이 하마평에 오르자, 바로 만나 단 하룻밤새 2년 재계약을 성공시켰다. 김 감독은 "허 구단주의 간곡한 요청과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허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공감하지 않았더라면 나오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선수 4명을 무상으로 프로에 내준 것이나, 김성근 감독을 하룻밤새 눌러앉힌 것이나 자신에게 '돈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돈을 까먹는 일이다. 기존 프로야구단 처럼 홍보효과를 크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뭘 바라고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행동들이다. 결국 그가 취한 행동들의 동인을 설명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의 '순수한 야구 열정' 외엔 마땅히 찾기가 힘들다.

허 구단주는 지난 2007년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관리 구단이 되면서 새로운 인수기업을 물색하고 있던 과정에서 당시 KBO를 찾아간 '당돌한 젊은 기업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네오플은 액션 게임 '던전앤파이터'로 한 해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익원이 없었던 그야말로 중소기업. 한 해에만 최소 2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그는 이후 또 다른 게임사인 넥슨에 회사를 매각했다. 3000억원 가까운 돈을 손에 쥔 그는 수차례 도전 끝에 버클리 음대에 진학했고, 이후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를 만들어 현재 공동 대표를 지내고 있다.

허 구단주의 '야구 멘토'로 잘 알려진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당시 현대 인수가 가능했다면, 허 구단주는 회사를 팔지 않고 계속 사업을 했을 것이라 했다"고 말했다. 넥슨은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서비스를 시작했고, 최근 동시접속자수가 300만명을 뛰어넘을 정도로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3000억원에 산 회사의 게임이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익을 안겨주며 넥슨을 국내 최대 게임사 반열에 올려놓았고,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시가총액 7조2000억원(30일 기준)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허 구단주의 시도가 결코 무모한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젊은 나이에 벼락부자가 된 허 구단주는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쏟아붓고자 했고, 이는 기존구단 인수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독립구단 창단으로 이어졌다. 당초 2010년 허 위원의 도움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의 2군 근거지였던 원당구장에서 원더스를 창단하기로 했지만, 원당구장측에서 마지막에 계약을 파기하면서 물건너간 듯 보였다. 그런데 국가대표 훈련장을 만들고 있던 고양시 최 성 시장의 협조를 받아 결국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에 1년 후 터를 잡으며 꿈을 펼치게 됐다.

허 위원은 "허 구단주가 기업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없이 야구단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그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았다"며 "하지만 현재 행보를 보면 그의 열정을 알게 될 것이다. 팀에서 뛰던 이희승이 LG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허 구단주는 펄쩍펄쩍 뛸 정도로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공언대로 이적료 한푼 받지 않았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돈을 야구단에 쓰고 있지만 허 구단주는 '김성근 감독의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배웠기에 투자한 돈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며 "야구에 미친 '기인'임에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최근 만난 김성근 감독도 "(허 구단주가) 자주 야구장에 나와 야구를 배워간다. 구단주라기보다는 선수에 가깝다.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좀처럼 언론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야구가 너무 좋아서 구단을 만들었을 뿐인데, 특이한 행보로 인해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이 영 부담스럽다며 전화통화조차 사양하고 있다. 30일 '고양 원더스를 성장시켜 10구단으로 전환시킬 생각이나 관심은 조금도 없냐'고 문자 메시지로 물었다. 그러자 이내 답이 돌아왔다. '아직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원더스는 (7전8기의 성공) 스토리를 사회에 기부하기 위해 만든 구단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진정성이 묻어났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