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더이상 실망시켜 드릴 수 없다."
LG 김기태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머쓱해 하는 취재진에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곧 닥칠 일"이라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LG는 28일까지 44승3무59패를 기록중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포스트시즌 진출은 또다시 물건너 간 상황이다. 김 감독이 곧 닥칠 일이라고 말한 건 바로 '60패'다.
김 감독에게 60패는 의미가 깊다. 시즌 전 그의 '목표'였다. 김 감독은 8개 구단 중 최연소 사령탑답게 목표에 대한 접근법부터 신선했다. 지난 1월 구단 시무식에서 "몇 등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다 똑같을 것"이라며 "올해 60패를 목표로 삼자. 시즌이 끝난 뒤 모든 순위와 성적에 대해선 내가 책임진다. 승에 대한 생각 말고 패만 생각하자"고 말했다.
흔히 우승, 4강 등의 순위나 승률 얼마 이상 등을 목표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패배를 먼저 언급했다. 무승부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73승을 목표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실질적인 목표는 60패 뒤에 감춰져 있었다.
김 감독은 시무식 뒤 "우리 선수단 전체를 세보니 총 73명이더라. 그래서 한 시즌 73승을 목표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1승을 거둘 때마다 선수 한 명에게 돌아가며 선물을 준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목표까지 이제 1패만이 남았다. 29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취재진과 만나 "감독으로서 욕심이 났던 건 사실"이라며 "그 정도는 해야 4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60패가 목표면)무승부를 감안해 +7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시무식 때 언급했듯, 김 감독은 성적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목표치에 한참 떨어진 데 대해 할 말이 없다. 감독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다른 핑계를 대기 보다는 남은 게임을 잘 하겠다. 선수들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만, 잘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60패까지 1패만을 앞둔 지금 시점에도 '포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팀 체질 개선을 위한 그만의 방법이다. 그가 포기를 입에 올리는 순간, 또다시 선수단은 현실 안주에 무기력증에 빠질 게 불 보듯 뻔하다.
김 감독은 "시즌을 포기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감독 목표가 틀어졌을 뿐이다. 지켜보는 분들이 많은데 더이상 실망시켜드릴 수 없다. 선수들의 성향과 정신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마지막까지 "죄송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은 끝까지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선수들 보면 용기 좀 북돋아 주십쇼." 포기 없는 김 감독의 지도 철학, 이제 선수들이 답할 때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