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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를 잊은 한화, 감독교체 태풍 속 선수단 수습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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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그룹의 사훈격인 '의리와 신용'까지는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프로야구 한화의 현 프런트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최소한의 바람마저 철저히 짓밟고 있다. 도무지 야구인과 현장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구단의 수장인 정승진 사장부터가 불과 50여일 전인 7월초에 스스로 했던 "한대화 감독에 대한 나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 시즌 중 감독 교체는 없다"는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렸으니 예하 프런트의 몰상식은 이미 예견된 일일 지도 모른다.

이미 공식 발표된, 한 감독의 자진사퇴로 포장된 경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매우 안타깝고 납득하기 힘든 처사지만, 한 감독 스스로 일단은 쿨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간 프로야구 역사상 성적 부진을 이유로 시즌 중 감독이 경질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한화 프런트의 행보나 발언은 여전히 이해불가다. 남은 이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처받은 코치진과 선수들, 돌아보기나 했나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한화를 이끌어온 한 감독은 현 8개 구단 사령탑 중 넥센 김시진 감독에 이어 한 구단에서 가장 오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다. 최근 몇 년간 불어닥친 '감독 교체 열풍'에 의해 나머지 감독들은 소속팀의 지휘봉을 잡은지 1~2년 정도 밖에 안된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한 감독의 지휘를 받아오면서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이에 쌓인 공감대는 매우 크다. 특히나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존중심의 대상'이다.

그런 이들에게 예상 밖의 '중도 해임'은 충격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시즌 잔여경기가 얼마남지 않았고, 올해로 계약이 만료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별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자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당황하고 있다.

이런 당황스러움은 곧 자책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화의 간판스타인 김태균이 해임 당일인 28일, "(감독 경질은)선수단의 책임이다. 특히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라고 한 말이 현재 한화 선수단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는 코칭스태프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수많은 코칭스태프의 자책감은 필연적으로 선수들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감독 경질'의 후폭풍이 현재 전체 한화 선수단의 심리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수장을 떠나보냈다'는 상실감과 '이렇게 된 것이 결국 내 탓'이라는 자책감, 그리고 '나도 저런 식으로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한화 선수와 코치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 경질 이후 한화 프런트가 선수단을 포용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한 이해를 구하는 등의 수습책을 시행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한화 프런트가 28일 하루 내내 한 일이라고는 "경질이 아니라 한 감독의 자진사퇴"라는 얇팍한 변명과 자기합리화 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후속처리는 등한시 한 셈이다.

▶감독대행은 소모품? 배려라고는 없다

또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눈에 띈다. 한대화 감독이 물러난 뒤 어려운 '감독대행'의 자리를 맡게 된 한용덕 수석코치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감독대행'의 자리는 참 애매하고 힘든 자리다. 갑작스러운 감독 경질로 인해 어수선한 선수단의 분위기를 수습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독대행'이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은 향후 신분에 대한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감독을 시즌 중 교체한 프런트의 입장에서는 '감독대행'이란 전임 감독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로 보이기 쉽다. 때문에 사태의 수습과 사후처리 이후의 '큰 그림'은 다른 감독과 그리고 싶어하는 게 프런트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감독대행'이 한시적인 자리라는 것은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나 그를 임명한 프런트가 서로 익히 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프런트의 '배려'는 실질적으로 이 공감대에서 출발하게 된다. 어차피 시즌이 마무리되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구단은 여러 명의 감독 후보군 가운데 새 인물을 택할 것이다. 그럼 굳이 벌써부터 '차기 감독'에 대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다. 이는 결국 현 감독대행을 무시하고 더욱 힘들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의와 배려'를 아는 프런트라면 감독대행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지라도, 최소한 면전에서 '새 감독'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구단들이 감독대행 체제 중에는 '차기 감독'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기피해왔다. 그게 배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한화는 이런 사소한 배려도 못하고 있다. 노재덕 단장은 벌써부터 "좋은 감독을 모셔오겠다. 김성근 감독도 감당 못할 것 없다"며 경솔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적어도 지금 한화 프런트가 할 일은 새 감독을 모셔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조용히 수습해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게 선수단과 감독대행, 나아가서는 팬에 대한 '예의와 배려'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