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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화 감독의 사퇴 암시, 그리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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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전구장. KIA와의 주말 마지막 경기를 앞둔 한화 한대화 감독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평소 전날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가려고 애쓰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심각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는 사람 같았다. 처음에는 전날 대패(4대16) 탓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덕아웃 앞줄에 앉아 잠시 외야 뒷쪽 보문산을 바라보던 한 감독. 느닷없이 한화 담당 기자들 일부를 돌아 보며 "휴가들은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많은 스포츠 담당 기자들은 런던 올림픽으로 인해 휴가를 늦춘 터. '아직 (휴가를) 못갔다'는 말을 듣자 "빨리 가야지. 나도 (친구가 있는) 우도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부가 한 감독의 휴가 코멘트에 관심을 보이자 "매년 12월쯤 가는데 올해는 조금 일찍가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계약 마지막 해. 재계약이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암시 정도로 생각했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한 감독의 시선은 다시 보문산에 머물렀다. 이틀 전 내린 비로 유독 파란 하늘과 한 감독의 표정이 잠깐동안 보색 대비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시 취재진 쪽으로 몸을 돌린 한 감독의 한마디. "올 한 시즌 좋은 야구를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순간 한 감독의 표정은 진지했다. 평소 농담과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어지간히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이 정도면 어느정도 안다. 신변 정리 코멘트라는 사실을….

기자들은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시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덕아웃에는 순식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야구 관련 소소한 취재가 이뤄질 분위기는 더 이상 아니었다. 어색함을 느낀듯 한 감독은 잠시 후 양해를 구하고 덕아웃을 떴다.

분위기를 종합해 볼 때 둘 중 하나였다. 전날 대패 후 구단으로부터 중도 사퇴에 대한 모종의 언질을 받았거나, 한 감독 스스로 사표를 냈거나였다. 어찌됐건 이미 중도 사퇴를 알게된 한 감독은 간접적이나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셈이었다. 한화 구단의 확인 과정만 남은 상황. 책임 있는 구단 관계자와 취재진 간의 즉석 면담이 긴급하게 이뤄졌다. 3년간 한화를 이끈 사령탑. 어떠한 형태로든 '퇴진' 여부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확인이 필요했다. 어차피 재계약이 힘들어진 사령탑에 대한 섣부른 '퇴진' 언급 자제. 언론의 최소한의 마지막 예우이기도 했다. 사실상 순위 싸움이 큰 의미가 없어진 30여 경기를 남긴 시점인 시즌 막판 감독 경질은 상식적인 의사 결정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등 중도 경질이 가능한 시기를 이미 놓친 탓에 쇄신과 변화란 측면에서도 별다른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취재진의 중도 퇴진 시사 언급에 한화 관계자는 펄쩍 뛰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재차 구단측의 확인을 요청하자 감독실로 향했다.

KIA측 덕아웃 취재를 마친 취재진에게 연락이 왔다. 관계자는 한대화 감독이 감독실에서 오해를 풀기 위한 해명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감독실에서 취재진을 다시 만난 한 감독은 어색하게 웃으며 "휴가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다보니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말이 이어졌다. "지금 그만두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지." 자진 사퇴는 아니란 암시였다. 사실 경질이라고 해도 적절치 못한 어색한 타이밍이었다. (어찌됐건 이날 대전 취재진은 한 감독의 해명을 존중하기로 했다. 일련의 해프닝은 보도하지 않았다.)

한화 관계자에게 마지막 확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바로 내일, 경기 없는 월요일(27일)에 사퇴 발표 나는 것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했다. 한화는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28일) 오후에 사퇴를 발표할 계획이다. 혹시라도 24시간 연기가 '월요일 언급' 때문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한반도를 초토화하고 지나갈 대형 태풍 볼라벤의 피해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날을 골라 발표하려는 타이밍 잡기는 더욱 아니길 바란다. 단 이틀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 3년간 애쓴 감독에게 깜짝 '천기 누설'을 수습하라며 원치 않는 거짓말을 강요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끝으로 만에 하나 대 언론 소통 창구인 한화 관계자가 이틀간 이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면 한화 구단의 소통 체계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 또한 아니길 바란다.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조직이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