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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경질, 자진사퇴로 포장되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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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는 자진사퇴, 실상은 경질. 왜 이러는 걸까.

한화는 28일 오전 보도자료를 냈다. 내용은 '한대화 감독이 27일 감독직 사의를 표명했다'였다. 자진사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대개 감독이 해고당할 때 구단이 자주 꺼내는 표현이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다. 누구나 경질임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공식 발표는 자진사퇴다.

▶사퇴 의사 있어도 밝히지 못했다?

당초 한화는 올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였던 한대화 감독의 임기를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시즌 종료 후 새 감독이 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내부의 '더이상은 안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한 감독은 시즌 도중 불명예 퇴진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 내내 구단 안팎으로 잡음은 계속 됐다. 이미 재계약 포기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레임덕' 현상이 왔고, 현장과 프런트가 대치하는 일이 계속 됐다. 이미 시즌 초반부터 외국인선수 영입과 코칭스태프 보직변경에 있어 한 감독의 의사는 묵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신임 감독으로 '누가 온다더라', '후보는 누가 있다'는 말들이 무성히 오갔다. 이런 상황에서 사퇴에 대한 마음을 먹지 않는 감독은 없다.

하지만 한화 정승진 사장은 지난 7월 초 "시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시즌 중 감독 교체는 없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의 정신인 '의리와 신용'을 내세우며 임기 중 경질은 없다고 자신했다. 코칭스태프 회식 자리에서도 "한 감독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며 한 감독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채 2개월을 가지 못했다.

지금 와서 자진사퇴라고 밝히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한 감독은 이미 사령탑 교체설이 불거지자, 책임을 지고 먼저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진작부터 내비쳤다고 한다. 그런 한 감독을 '잠시' 붙잡아둔 건 구단이다.

▶코너에 몰아놓고 '마지막 예우', 이미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지난해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자진사퇴를 발표한 박종훈 전 LG 감독과 준플레이오프 패배 후 사퇴한 조범현 전 KIA 감독도 상황은 비슷했다. 발표는 자진사퇴였지만,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박 감독의 경우 2009년 말 팀의 리빌딩을 맡아달라며 5년 장기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감독 2년차였던 지난해 그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였다.

지난해 LG는 시즌 초반 고공비행을 하며 9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렸지만, 추락을 거듭하며 공동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중 구단은 당초 목적인 리빌딩이 아닌, 4강을 기대했다. 추락이 시작된 뒤부터 감독 교체에 대한 설이 피어올랐다. 때마침 팬심도 여론도 들끓었다. 팬들은 '청문회' 형식으로 박 감독을 성토했고, 감독이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남겨 민심을 달래는 촌극도 빚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이 모종의 말을 꺼내게 되면, "내가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말을 안 할 감독이 없다. 한대화 감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코너에 몰아놓고, 조용히 몇 마디 꺼내면 일은 끝난다. 그의 입을 빌어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조 감독의 경우 마무리훈련을 준비하다 갑작스레 경질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었지만, 계약기간을 1년 남기고 중도 하차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어도 우승 감독의 교체는 전격적이었다.

당시 구단 실무진이 아닌, 그룹 고위층에서 감독 교체를 준비했다는 말이 있었다. 출신이 다른 감독 대신, 프랜차이즈 스타를 모시려는 움직임이 있던 것이다.

감독은 구단과의 관계에 있어 철저히 '을'의 지위에 놓여있다. 어쨌든 임기와 연봉이 정해진 감독을 고용하는 건 구단 몫이다. 성적이 좋을 땐, 잠시나마 감독이 '갑'의 입장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끈 떨어진' 감독에겐 구단이 '절대 갑'일 수 밖에 없다.

흔히 자진사퇴 발표는 감독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말한다. 경질이 아닌 자진사퇴로 포장하는 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잘린' 감독에게 무엇이 남아있을까. 해고가 자진사퇴로 포장되는 불편한 현실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