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안방에서 자취를 감췄던 '막장 드라마'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MBC '메이퀸'과 SBS '다섯손가락'이 바로 화제의 주인공이다.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두 드라마는 극명한 선악구도와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의 전형적인 설정들도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 '메이퀸'은 선박회사, '다섯손가락'은 악기회사라는 배경만 다를 뿐, 캐릭터의 성격이나 갈등의 내용이 비슷해 '닮은꼴 막장'이라는 얘기까지 듣고 있다.
'메이퀸'은 '욕망의 불꽃'을 만든 울산 MBC 작품이다. 울산의 지역색이 물씬 느껴지는 조선소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야망과 사랑, 배신과 복수, 몰락과 성공을 그린다. 여주인공 해주(김유정)는 젖먹이 때 버려져 천홍철(안내상)의 손에서 자랐다. 열세살 어린 나이에 빈병을 주워 팔아 찬거리를 사오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일 정도로 억척스럽고 씩씩해도 계모(금보라)의 구박은 그칠 줄 모른다. 천지그룹의 오너 장도현(이덕화)은 조선소 건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배밭에 독성물질을 뿌리는 악행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도현의 수족 노릇을 하는 박기출(김규철)에게는 아들 박창희(박건태)가 유일한 희망이다. 해주의 등장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기출의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품게 된 홍철은 해주가 장도현 일가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과 아이를 잃고 박기출과 재혼한 이금희(양미경)의 잃어버린 친딸이 해주일 거란 사실이 강하게 암시됐다.
'다섯손가락'도 '아내의 유혹'으로 드라마계에 한 획을 그은 김순옥 작가의 필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부성악기의 오너 유만세(조민기)의 아들이자 피아노 천재인 유인하(김지훈) 앞에 어느날 배다른 형제 유지호(강이석)가 나타난다. 지호는 유인하를 밀어내고 그룹의 후계자로까지 부상한다. 돈과 꿈을 맞바꾼 채영랑(채시라)은 겉으로는 지호를 친아들처럼 보듬으며 현모양처 노릇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들 인하가 그룹을 물려받을 날만을 기다리는 이중적 캐릭터다. 시어머니의 치매를 감춘 사실 때문에 실랑이를 하던 중 유만세가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고 집이 화마에 뒤덮였지만, 만세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방문을 장식장으로 가로막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지호는 만세가 결혼 전에 낳은 아들로 설명됐지만, 친모에 대해 묻는 지호에게 만세는 "네 어머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고 답해 복선을 깔았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 외에 상상도 못했던 비밀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출생의 비밀 외에에도 주인공이 천재성을 지닌 인물이란 것도 닮았다. '메이퀸'의 해주는 기계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손재주를 타고났고, '다섯손가락'의 인하는 절대음감과 천재적 음악성을 지녔다. '메이퀸' 천지그룹이나 '다섯손가락' 부성악기 모두 탐욕스러운 재벌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과 선악구도를 이룬다. 어린 시절부터 얽히고설킨 주인공들의 3각-4각 멜로라인이 성인 시절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여러 드라마에서 반복돼온 설정이다. 방송 초반부를 담당한 아역들의 맹활약으로 인해 자극의 강도가 덜하게 느껴질 뿐, 설정만 놓고 보면 '막장 중의 막장'이라 해도 억울할 게 없다. 시청률도 나란히 10% 초중반대를 기록하며 비슷한 폭으로 상승 중이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 게시판에는 "자극적 설정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얘기가 많이 올라온다. 한 시청자는 트위터에서 "'메이퀸'은 '욕망의 불꽃'을, '다섯손가락'은 '제빵왕 김탁구'를 리메이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의 법칙이 또 한번 재현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전작이 MBC '닥터진'과 SBS '신사의 품격'이었단 사실을 떠올리면 이같은 상황은 다소 우려스럽다. 두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아침드라마와 함께 막장의 대표격으로 꼽혔던 주말 안방극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필두로 로맨틱 코미디 '신사의 품격'과 판타지 사극 '닥터진'이 경쟁을 펼치며 장르적으로도 풍성해졌다. 이들 모두 막장을 배제하고도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청정 무공해 드라마'였다.
'막장 드라마의 재림'을 두고 일부에선 '균형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판타지가 휩쓸고 간 자리에 정극들이 출현하는 것처럼, 일종의 '반작용'란 얘기다. 하지만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이 막장드라마의 봇물을 터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판타지가 인기를 모으자 너도나도 판타지로 쏠렸던 것처럼 말이다. 안방극장의 질적 후퇴가 염려되는 이유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