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한화 류현진, 지독한 불운에 또 당했다

by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23일 문학구장에서 SK전에 선발 등판한 한화 에이스 류현진(25)을 두고 하는 말이다.

류현진은 이날 예비 수능시험을 치는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관찰하려고 대거 달려온 해외 유수 팀들의 스카우트 앞에서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시카고컵와 일본 오릭스의 스카우트, 구단 고위층들이 이날 류현진을 지켜봤다.

류현진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5승에 머물고 있던 터라 10승 고지를 위한 반환점을 반드시 돌고 싶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또 울어야 했다. 시즌 초반 호환 마마처럼 한화를 괴롭혔던 실책성 수비, 허술한 주루 플레이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이날 7⅔이닝 동안 99개밖에 던지지 않으며 투구수 관리도 좋았다. 성적도 8안타를 허용했지만 볼넷 1개도 없이 9탈삼진을 잡아냈다. 하지만 5실점을 했다. 이 가운데 자책점은 2점 뿐이다. 류현진이 이날 얼마나 불운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숫자였다.

▶양팀 벤치의 미묘한 '허허실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양팀의 감독들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같은 '허허실실' 작전을 썼지만 색깔은 달랐다. SK 이만수 감독은 선발 류현진에 대해 먼저 경계심을 드러내는 척했다. 지난달 8일 대전 경기를 떠올렸다. 당시 SK는 8이닝 2안타 9탈삼진 무실점 호투한 류현진에 당하며 0대5로 완패했다. 이 감독은 "그날 대전구장 현장에 해외 스카우트들이 대거 몰려와 류현진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면서 "오늘도 스카우트들이 많이 왔다는데 그 때처럼 잘던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이 감독의 엄살이었다. 이 감독은 올시즌 SK가 류현진을 상대해서 그때의 패배를 제외하고 2승을 챙겼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우리 타자들이 올시즌에는 류현진의 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략을 잘한다"면서 "2승을 할때 총 8점까지 뽑았으니 오늘도 알아서 잘 쳐줄 것"이라고 2승의 자신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화 한대화 감독은 류현진에게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초조감을 대신했다. 덕아웃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류현진을 부른 한 감독은 "현진아, 어제 경기에 너를 등판시킬 걸 그랬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날 무명의 윤근영이 선발 등판했을때 한화 타선은 5점을 뽑아주며 윤근영의 부담을 덜어줬다. 타선의 지원 덕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류현진을 위로하려는 농담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감독은 "어제 우리 타자들이 타격감을 좀 잡은 것 같은데 최소한 이틀은 가지 않겠느냐"며 여유를 보였다.

▶류현진 또다른 불운에 울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양팀 감독의 타자들에 대한 기대는 딱 들어맞지 않았다. 류현진이 지지리도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류현진은 올시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불쌍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날은 생각지 않았던 다른 곳에서 불운을 맛봐야 했다. 1-0으로 앞서던 2회말 2사 2, 3루에서 박진만에게 역전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할 때부터다. 박진만의 타구가 유격수 뒤쪽 애매한 위치에 떨어졌다. 좌익수 최진행, 우익수 김경언가 달려갔지만 손을 써볼 만한 타구가 아니었다. 5회말 추가 실점을 할 때에는 수비실책에 울었다. 박재상의 좌중간 2루타 타구였는데 교체 투입된 중견수 추승우가 2루로 송구한다는 것이 악송수가 되는 바람에 3루까지 내줬다. 결국 이어부지리 3루 진루는 최 정의 희생플라이 추가 득점의 징검다리가 됐다.류현진을 강판시킨 8회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1사 1루에서 이호준을 상대한 류현진은 2루수 땅볼을 유도했다. 병살로 막기에 딱 좋았다. 하지만 2루수 전현태는 2루 바로 옆에서 포구를 하고도 허공을 향해 송구를 해버렸다. 순식간에 1사 2, 3루의 위기가 됐고, 애써 표정관리를 하던 류현진은 하늘을 쳐다보며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후속타자 박정권이 허점을 놓칠 리 없다. 우익수앞 2타점 적시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어디 그뿐인가. 한화는 부실한 주루 플레이로 역전찬스까지 허망하게 날렸다. 6회초 무사 만루에서 이대수가 2-3으로 추격하는 적시타를 때렸지만 동점을 노리던 장성호가 홈에서 잡히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1사 만루의 찬스를 이어나가며 희망을 살리는 듯했지만 추승우가 1루수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실소만 안겨줬다.

7회초 1사 1, 3루의 득점 찬스도 마찬가지다. 1루 주자 오선진이 도루 타이밍을 늦게 잡는 바람에 2루 앞에서 여유있게(?) 횡사하며 추격기회를 반납하면서 부실한 수비와 공격의 종합세트를 완성했다. 한화는 이날 안타 대결에서 7대9로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타선 지원이 되는가 싶으면 엉뚱한 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는 게 한화 전력의 객관적인 현실이었다. 결국 류현진은 6승 도전에 또 실패한 채 7월 29일 KIA전 승리 이후 근 1개월째 무승의 늪에 빠져야 했다. 인천=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