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요원인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 분)와 함께 사는 공장노동자 더글라스(콜린 패럴 분)는 의문의 여인과 함께 탈출하다 생포되는 악몽에 시달린 후 '리콜'에서 꿈을 이식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들이닥쳐 '리콜'의 직원을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자 더글라스는 맞서 싸웁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의 '토탈 리콜'은 필립 K. 딕의 SF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을 폴 버호벤 감독이 영화화한 1990년 작 '토탈 리콜'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지구와 화성이 공간적 배경이었던 1990년 작과 달리 리메이크는 영국을 의미하는 UFB와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로 공간적 배경이 바뀌었으나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피착취 관계는 동일합니다. 더글라스, 로리, 멜리나, 코헤건 등 중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역할 또한 동일합니다. 기억을 이식받는 도중에 문제가 발생하며 자신의 숨겨진 정체에 고뇌하던 주인공이 혁명을 완성한다는 서사의 얼개 또한 동일합니다.
리메이크에는 1990년 작에 대한 오마주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더글라스의 동료인 마렉(윌 윤 리 분)이 ''리콜'에서 화성의 왕이 된 남자가 있다'고 언급하는 대사는 당연히 1990년 작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글라스가 UFB에 잠입할 때 아이폰 모양의 금속 탐지기를 지나 출입국심사대에서 '2주'간 머물 것이라 외치는 거구의 여성의 용모와 옷차림은 1990년 작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장면 중 하나인 주인공이 벗어던진 거구의 여성의 가면 및 옷차림과 비슷합니다. 흥미롭게도 리메이크에는 거구의 여성이 더글라스가 아니라 여성의 뒷사람이 더글라스라는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가슴이 세 개 달린 여성이 잠시 등장하는 장면 역시 1990년 작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리메이크의 새로운 설정인 안드로이드가 엘리베이터 사이에 팔이 끼어 파괴되는 장면은 1990년 작에서 주인공의 최대 라이벌 리히터(마이클 아이언사이드 분)의 최후를 상기시킵니다.
'토탈 리콜'의 두 개의 주된 공간적 배경은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화한 다른 작품들을 연상시킵니다. 지배 국가인 UFB의 말끔히 정돈된 기계적인 모습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키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는 한글, 한자, 일본어, 아랍어 등이 마구 뒤섞인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활기 넘치는 차이나타운을 연상시켜 '블레이드 러너'의 공간적 배경을 빼닮았습니다. 더글라스가 베토벤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장면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가 피아노를 치다 잠든 뒤 꿈속에서 유니콘을 목도하는 장면의 오마주입니다.
하지만 렌 와이즈먼의 리메이크는 1990년 작의 날선 매력을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튀어나오는 눈알, 화성의 돌연변이와 같은 신체 훼손 및 변형에 대한 공포, 블랙 유머, 그리고 강력한 고어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의 노출 수위도 낮아지는 등 섹스의 요소 또한 약화되었습니다. 철두철미한 성인용 SF였던 1990년 작과 달리 리메이크는 10대를 위한 물량공세 액션 영화를 추구한 듯합니다. 액션의 비중은 다대하며 매우 화려하지만 정작 독특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90년 작은 주인공 더글라스의 자아정체성 고뇌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정체에 관련된 강력한 반전이 숨겨져 있었지만 리메이크는 반전의 폭이 축소되었습니다. 저항조직 지도자에 관련된 반전이 제외된 것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서사도 매우 밋밋합니다.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로 풍부한 텍스트였던 1990년 작과 달리 리메이크에서는 각본에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가벼운 영화로 전락한 것입니다. 1990년 작의 서사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쏭달쏭해 큰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리메이크는 '리콜'에서 꿈을 주입하는 시간이 매우 짧으며 전반적으로 꿈보다는 현실에 방점을 두는 인상입니다.
렌 와이즈먼이 아내 케이트 베킨세일의 비중을 지나치게 강화한 것 또한 오히려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1990년 작에서 더글라스의 라이벌 리히터의 캐릭터를 삭제하면서까지 리히터의 역할을 아내 로리에게 맡겼는데 감독의 아내가 극중에서 주인공의 악처 역할을 맡은 설정은 흥미롭지만 종횡무진 영화를 휘젓는 케이트 베킨세일의 연기와 액션은 남편의 프랜차이즈 '언더월드' 시리즈에서와 차이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케이트 베킨세일의 과다한 비중으로 인해 주인공 더글라스와 '꿈의 여인'이 되어야 할 멜리나의 개성 또한 사라집니다. '토탈 리콜'은 렌 와이즈먼이 아내 케이트 베킨세일을 위해 바치는,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리메이크에 그칩니다.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1990년 작과 리메이크는 눈높이와 기대치가 달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로보캅'의 흥행 감독 폴 버호벤과 당대 최고의 액션 배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이름값을 합하면 현재의 렌 와이즈먼과 콜린 패럴의 이름값이 뒤지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셉션'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감독이 '토탈 리콜'을 리메이크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영화는 화려한 특수 효과나 액션보다는 각본과 감독의 연출력에 따라 완성도가 갈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토탈 리콜'의 리메이크가 몸소 입증합니다. <이용선 객원기자, 디제의 애니와 영화이야기(http://tomino.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