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10개 못 땄으면 템즈강에 빠져죽을 뻔했다."
12일 코리아하우스 '한국선수단의 밤' 행사에서 만난 박종길 태릉선수촌장이 농담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박 촌장에게 "금메달 10개 못따면 템즈강에 빠져죽으라"고 했었단다. 이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체조, 리듬체조, 탁구, 유도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태릉에 갈 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박 촌장을 마주쳤다. 손연재의 대표선발전에도, 양학선의 평가전에도, 탁구훈련장 오픈식에도 박 촌장은 늘 거기에 있었다. 복싱, 유도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운동장에서 함께 뛰는 모습도 여러번 봤다. 24시간 태릉을 돌아다니는 '24도라' 촌장님이라고 했다.
런던올림픽 현장에서도 박 촌장은 어디서나 존재하는 '유비쿼터스' 촌장님이었다. 전종목 선수들의 경기를 현장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지난 8일 전상균의 역도 경기장에서 박 촌장은 바벨 앞에 선 전상균을 향해 두 팔을 벌려 기를 모아주기 시작했다. 인상 200㎏ 실패를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다. "저 정도는 연습기록에서도 충분히 나오는데… 용상 250㎏ 넘어가면 힘든데…." 선수의 연습기록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균!"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온몸에 힘을 다해 기를 모으는 촌장님을 외국 선수단 관계자들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지난 2년간 600일 넘게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태릉을 지켰다는 박 촌장은 선수들의 성격은 물론 형제 관계, 여자친구, 집안 내력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김현우는 부모님이 헌신적이야, 매주 태릉에 오거든. 홍삼을 싸들고 와서 아들한테 주고 가지" "복싱의 한순철이는 딸래미 도이 때문에 잘할 수밖에 없어. 도이 얘기만 하면 힘이 번쩍 날 걸, 무조건 잘해야 돼." "대남이는 딸이 하난데, 이름은 재희고, 얼마전에 백일잔치를 했어. 당연히 나도 갔었지." 선수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남다른 관심과 스킨십은 메달을 향한 동기부여로 이어졌다.
남자유도에서 '깜짝 메달'을 목에 건 송대남은 자신의 메달이 '깜짝 메달'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 "박 촌장님은 내가 금메달 후보라는 걸 알고 믿어주셨다"고 했다. 박 촌장 역시 "대남이만 보면 늘 너는 할 수 있다. 너밖에 없다. 너는 반드시 해낸다고 말해줬다. 한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고 했다. 레슬링에서 부상 투혼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건 김현우 역시 시상식 직후 박 촌장에게 달려와 뜨겁게 포옹했다. "촌장님이 너는 반드시, 무조건 해낸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사격 국가대표 출신인 '명사수' 박 촌장은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가능성을 먼저 읽어냈다. 모두가 스타플레이어만 주목할 때 박 촌장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선수들을 남몰래 응원하고 사기를 북돋웠다. 미디어데이에 만난 기자들에게도 "여기 있는 이 선수들 말고도 메달을 따낼 선수들이 많이 있다"고 귀띔했었다.
박 촌장의 열정은 보답받았다. 금메달 13개-종합 5위 최고의 성적으로 런던올림픽을 마감하게 됐다. "이제 템즈강에 빠져죽지 않아도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