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이돌 스타'였다.
소녀팬들의 괴성이 귓가를 즐겁게 했다. 융성한 환대에 영웅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꿈인지 현실인지,어리둥절해했다.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홍명보호가 12일 금의환향했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필두로 18명의 태극전사들이 모두 고향의 품에 안겼다. 유럽파인 박주영(아스널)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기성용(셀틱) 김보경(카디프시티) 지동원(선덜랜드)과 J-리거 황석호(히로시마) 백성동(주빌로 이와타), 중국-중동파인 김영권(광저우) 남태희(레퀴야), K-리거 정성룡(수원) 윤석영(전남) 김창수 이범영(이상 부산) 김현성(서울) 오재석(강원) 등이 돌아왔다. 해외파들이 소속팀에 복귀하지 않고 특별휴가를 받아 한국땅을 함께 밟아 기쁨은 두 배였다.
'왕의 귀환'이었다. 환영행사가 열린 인천공항 밀레니엄홀은 아이돌 콘서트장이었다. 인천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런던올림픽의 감격이 물결쳤다. 환호가 떠나지 않았다. 1000여명의 팬들이 입국장을 찾았다. '소녀팬'들이 부활했다. 이동 동선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됐지다. 이들의 열정은 막지 못했다.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했다. 플래쉬는 쉴새없이 터졌다. 취재진도 100명이 넘었다.
홍명보호는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사를 새롭게 썼다. 1승2무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올림픽대표팀은 8강전에서 개최국 영국과 1대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4강전에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에 0대3으로 패했지만 동메달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2대0으로 꺾고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처음으로 세계 3위를 달성했다. 국제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지만 3~4위전에서 터키에 패해 4위를 차지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도 4위에 만족해야 했다.
2009년 첫 발을 뗀 홍명보호는 무관심에서 시작됐다. 이집트 청소년월월드컵 8강에 이어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동메달)을 거쳤다. 무관심에서 반짝 관심, 회의, 희망에 이어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물론 선수들이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인천공항이 떠날 듯 함성이 메아리쳤다. 홍명보호도 감격했다. 홍명보 감독은 "다른 말보다 팀을 위해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밖에 드릴 것이 없다"며 "떠나기 전 여러분에게 메달을 꼭 따겠다고 약속한 것을 이뤄 기쁘게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탈출했다. 팬 여러분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결과를 못 얻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그리고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독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많은 팬들의 환영하는 자리에서 마지막 자리를 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웃었다.
한-일전에서 '동메달 결승골'을 터트린 박주영도 "지난 한 달 동안 대표팀과 함께 교감해준 국민과 그 사랑에 감사드린다.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주장 구자철은 "메달을 따오겠다던 약속을 지켜서 자부심을 느낀다. 밤잠을 설치며 응원해준 국민 덕분에 힘들 때 오히려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와준 팬들께 고맙다"고 감사해 했다. 기성용은 "선수 코치뿐 아니라 우리 팀을 위해서 묵묵히 일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고 전했다.
올림픽 축구는 '동메달 기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루가 지난 대한민국은 여전히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대형 태극기와 함께 '미라클 런던, 국민 여려분의 뜨거운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2012년 8월 12일 한국 축구의 오늘이었다. 인천공항=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