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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동메달 획득의 밤, 그 현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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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이었다. 서로 지지않으려 했다. 아니 질 수 없었다. 그라운드내에서는 전쟁, 밖에서도 전쟁이었다. 동메달 결정전에 앞서 한-일전이었다.

카디프는 전쟁터였다. 영국 각지에서 한국과 일본의 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한국팬들은 카디프 시내에서 대형태극기를 꺼내들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일본팬들도 소리 높여 '니폰'을 외쳤다 . 경기 중에도 양 진영의 응원 소리는 치열했다.

홍명보호가 힘을 냈다. 전반 38분 박주영의 환상적인 골이 터져나왔다. 승기를 잡았다. '대~한민국' 소리는 더 높아졌다. 후반 시작 전 승리를 예감할 수 있었다. 밀레니엄 스타디움 3층 관중석 코너에 대형 태극기가 등장했다. 붉은악마가 가져온 태극기였다. 관중들이 없는 구역에 태극기를 펼쳤다. 경기 진행 요원들이 태극기를 걷으려고 했다. 한국 팬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카디프 시민들이 나서서 막았다. 카디프 시민들은 "Let them do(그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라고 외쳤다. 경기 진행 요원들은 철거를 포기했다.

구자철의 두번째 골이 터져나왔다. 밀레니엄 스타디움은 온통 태극기 천지였다. 2대0의 승리. 관중석 곳곳에서 그라운드로 태극기를 내려보냈다. 선수들은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팬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기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경기 후 라커룸은 광란의 파티장이었다. 선수들은 음악을 크게 틀었다. '오! 필승코리아!'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물과 스포츠음료를 서로에게 뿌렸다. 코칭스태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태영 코치를 습격했다. 물과 스포츠음료가 함께 담긴 아이스박스를 쏟아부었다. 얼음과 함께였다. 김 코치는 고개를 돌리다가 얼음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이마가 퉁퉁 부어올랐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홍 감독은 기자회견에 나섰다. 옷에는 물과 스포츠음료 얼룩이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홍 감독은 "라커룸은 미친 놈들 같다"고 말했다.

파티는 이어졌다. 팀 숙소인 호텔 1층 펍을 전세냈다. 신나게 춤추고 놀았다. 맥주 한잔도 곁들여졌다. 그 와중에 일본팀의 반응이 신경쓰였다. 일본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왁자지껄했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의 여자친구를 호텔로 부르기도 했다. 홍명보호 선수들은 더욱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팬들이 호텔로 찾아왔다. 경기장에 걸었던 대형태극기를 들고 카디프 시내 가두행진한 뒤였다. 홍 감독이 팬들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선수들이 하나하나 나와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기념 사진을 찍고 서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축하 파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였다. 호텔 로비에서는 홍 감독과 박주영이 마주 앉았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긋이 바라봤다. 홍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홍 감독은 "네가 골을 넣어준 덕택에 내가 군대를 안 가게 됐다. 고맙다"고 했다. 홍 감독은 6월 가졌던 박주영 병역 관련 기자회견에서였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군입대를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박주영 때문에 겪었던 마음 고생이 묻어있었다. 박주영은 싱긋 웃었다. 그러더니 "그럼 4주 기초군사훈련이라도 대신 가주세요"라고 했다. 서로 크게 웃었다.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사나이들이 화끈한 마무리였다. 카디프(영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