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 다툼이 치열해질수록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작은 사안이라도 승부에 영향을 미칠 경우 심판에게 반드시 확인을 하고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 법.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LG의 경기에서는 때아닌 '사인 훔치기' 논란이 잠시 일었다. 3회말 삼성의 공격 2사 1,2루서 7번 신명철이 타석에 들어섰다. 1루주자는 진갑용, 2루주자는 최형우였다. LG 선발 김광삼이 던지고 있는 동안 유격수 오지환이 이기중 2루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지환의 어필이 계속되자 심판진은 2루 근처에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오지환은 2루주자 최형우가 포수의 사인을 보고 타자 신명철에게 알려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는 주장이었다. TV 화면상으로는 이를 본 김광삼이 오지환에게 "어필은 내가 할테니 하지말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형우는 스킵 동작을 취하면서 2루까지의 거리를 확인하고 상대 2루수와 유격수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고개를 계속해서 옆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오지환 입장에서는 삼성이 2루에 주자가 있을 때 의심스러운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12일 경기를 앞두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류 감독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사인을 훔쳐보는가. 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고, 선수들에게도 절대 그런 일은 없도록 하라고 강조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류 감독은 "(사인을 훔치든 보여주든)상대방이 모르게 하는 것도 실력이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실력"이라며 "당시 최형우의 움직임을 보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데 고개를 돌리는 것은 2루까지의 거리를 확인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류 감독은 또 "나는 우리 투수가 상대타자에게 자꾸 안타를 맞으면 글러브를 상대가 구종을 알 수 있게 움직이지 않았나부터 생각한다. 그래서 경기 중간에 글러브 모양만 확인시키곤 한다"고 덧붙였다.
잠시후 LG 김기태 감독이 1루쪽 덕아웃에 나타나자 류 감독은 직접 김 감독을 만나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서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 역시 "우리 선수들이 민감해 한 측면이 있다. 경기가 끝난 다음 타격코치와 투수코치에게 너무 민감해 하지 말라고 선수들한테 다시 주지시키라고 했다"며 "사실 별 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했다.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2루주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투수의 투구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두 사령탑은 "그렇다면 눈을 감고 야구를 하는 수밖에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대구=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