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V세대' 국가대표들은 강했다. 6일(한국시각) 현재 금메달 10개로 세계 4위를 질주하고 있다. 10-10 목표를 일찌감치 초과 달성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V세대의 포스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용감하고(Valiant), 다양하고(Various), 생기발랄(Vivid)했다. 올림픽 무대를 부담스러워하던 기존 세대들과는 애초에 DNA가 다르다. 솔직당당하고 위풍당당하다.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안다. 유쾌하고 자신만만하다. 어지간한 일에 주눅 들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 오심, 실격 등 아픔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꿈을 이뤘다. 저마다의 올림픽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챔피언이다. 2012년 신명나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힘이자 희망이다.
▶솔직당당 DNA: "저희 사귀는 것 맞아요"
예전같으면 쉬쉬하며 숨기기 급급했을 것이다. 노코멘트로 일관했을 수도 있다. 남자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은 여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후배 기보배와의 열애설이 터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당당하게 대응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 이미 두 사람의 핑크빛 모드를 간파하고 있던 취재진이 목말랐던 열애 인정 코멘트였다. 태릉선수촌의 신세대 선수들은 열애를 당당히 공개한다. 선배 세대인 박경모-박성현 커플이 룸메이트도 모를 만큼 철저한 비밀연애를 한 데 비해 이들은 2010년부터 공개연애를 했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 서로를 의지했다. 나란히 꿈을 이뤘다. 사랑의 힘으로 '시너지효과'를 냈다. 가장 빛나는 금메달을 함께 목에 걸고 '골드커플'의 탄생을 만천하에 알렸다.
▶야심만만 DNA: "스타가 되고 싶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지만 끼가 넘친다. 스타가 되고 싶은 꿈도 숨기지 않는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사브르의 김지연은 깜짝 금메달 직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했다"고 털어놨다. '얼짱 검객'이라는 찬사에 수줍어하거나 뒤로 빼지 않았다. "완전 고맙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여자사격 금메달리스트인 스무살 김장미는 세리머니에서 두 팔을 벌린 독특하고 깜찍한 포즈로 화제가 됐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떨거나 쫄지 않았다. 그동안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해 섭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저는 충분히 뜰 수 있는 선수였는데, 감독님이 인터뷰를 제한하셔서…"라는 당당한 대답으로 미소를 자아냈다.
▶위풍당당 DNA: "오심, 실격? 위기에 더 강하다"
대회 초반 유난히 오심, 실격 등 해프닝이 많았다. 펜싱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신아람의 '멈춰버린 1초' 오심 사건은 뼈아팠다. 상대의 공격을 아무리 막아내도 마지막 1초가 흐르지 않았다. 4번째 공격을 허용하며 역전패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선수는 눈물을 쏟았다. 오심으로 상처 입은 동료의 명예회복을 위해 실력으로 보여주자는 끈끈한 동료의식이 펜싱대표팀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다음날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최병철의 동메달이 터졌다. 이후 5일 연속 기적같은 메달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종주국' 유럽의 중심에서 '금2 은1 동3' 한국 펜싱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마침내 은메달을 목에 건 신아람은 "내 힘으로 메달을 따고 싶었다. 나는 더 강해졌다"며 웃었다.
유도의 조준호 역시 오심에 굴하지 않았다.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를 상대로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지만, 심판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판정이 번복됐다. 위기의 순간, 오히려 독해졌다. "동메달 결정전에 나서면서 정 훈 감독님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투지를 보여주자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홍명보호'는 홈팀 영국연합을 상대로 올림픽 첫 4강 신화를 썼다. 영국연합과의 8강전,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전반 1-1 상황에서 나온 석연찮은 2번째 페널티킥 판정에 태극전사들은 흥분했다. 주심에게 몰려드는 선수들 앞을 '캡틴' 구자철이 막아섰다. 주장답게 전면에 나서 주심에게 조목조목 항의했다. 당당하게 맞섰다. 태극전사들은 영국, 독일, 일본 등 해외리그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몸도 마음도 강하게 단련됐다. 소통에서도, 기싸움에서도, 몸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재기발랄한 청춘들이 런던올림픽에서 또 한번 희망을 보여줬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 시련에 굴하지 않는 패기, 위기 속에 더 강해지는 코리아의 저력을 보여줬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