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20·한체대)은 런던 입성 후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다. 태릉선수촌에 노메달로 돌아온 후 친한 동료들이 등을 돌리는 악몽을 꿨다. 경기 이틀전엔 경기 직후 순위가 나오지 않는 꿈을 꿨다. 경기 2시간 전 전화를 걸어 불안해 하는 막내아들에게 어머니 기숙향씨는 "아들, 내가 좋은 꿈을 꿨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금메달을 딴 후 "엄마의 꿈이 궁금하다. 얼른 물어보고 싶다. 너무 보고싶다"며 애틋한 마음을 표했다.
기씨에게 직접 확인한 꿈은 금메달을 점지한 예지몽이었다. "학선이가 금은동메달을 다 들고 와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더라. 자기것까지 다 나눠줄까 싶어 네것은 어디 있냐고 했더니 당당하게 '내것은 금메달이여'하더라"며 웃었다. 어머니의 '금메달' 꿈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은 양학선이 싱긋 웃었다.
'도마의 신' 양학선이 6일 밤(한국시각) 런던 노스그린위치 아레나에서 펼쳐진 런던올림픽 남자체조 도마 결승에서 짜릿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명이 나서는 결선 무대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처음부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세계 최고의 난도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면 금메달은 '떼논 당상'이라고들 했다. 꿈자리까지 짓누르던 부담감을 떨치고 날아올랐다. "부담감이 컸었는데 막상 손을 들고 달려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잊었다. 도마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1차시기 자신의 이름을 딴 'YANGHAKSEON(양학선, 일명 양1)'을 올림픽 무대에서 선보였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3바퀴, 1080도를 비틀어내렸다. 착지가 불안했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소년만이 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연기 '난도 7.4'에 대한 심판들의 점수는 후했다. 착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16.466, 최고 점수였다. 두번째 스카라트리플은 '클린'이었다. 점수가 발표되기 전에 이미 금메달을 예감했다. 주변 선수들이 먼저 축하를 건넸다. 스티브 버처 국제체조연맹(FIG) 심판위원은 "'양학선'은 엄청나게 높은 난도다. 오직 양학선만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스카라 트리플은 많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해낸 경우는 처음 본다.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금메달이다. 어메이징하다"고 극찬했다.
양학선의 금메달은 한국 체조사를 다시 쓴 최초의 금메달이다. 박종훈(1988년 서울올림픽 동메달), 유옥렬(1992년 바르셀로나 동메달), 여홍철(1996년 애틀란타 은메달) 등 이 종목의 걸출한 선배들도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뤘다. 1960년 로마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총 13차례 올림픽에서 은4, 동4에 그쳤던 한국 체조 50년 '노골드'의 한을 마침내 풀어냈다.
'거침없는 청춘' 양학선이 올림픽 포디움을 앞두고 바꾼 메신저 대화명은 '양!학!선!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을 패러디했다. 도마 앞에서 진정한 용감함을 보여줬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