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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경호원을 꿈꾸던 천재소녀' 金장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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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수 사격 총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인터뷰 금지령을 내렸다. 사격은 정신적 부분이 많이 좌우하는 스포츠다. 올림픽을 앞두고 이어진 각종 인터뷰에 들뜰 것을 걱정했다. 선수들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모든 선수들이 걱정됐다. 그 중에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이는 김장미(20·부산시청)이었다.

▶신이 내린 천재

김장미는 '천재형' 선수다. 2004년 초등학교 6학년 김장미는 경호원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합기도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을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경호원이 되기 위해서 사격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마침 인근 중학교 사격부가 눈에 띄었다. 무작정 찾아갔다. 한달을 버텼다. 가능성이 보였다. 중학교 1학년 때인 2005년 총을 잡게 됐다. 처음에는 소총이었다. 소총과 권총은 완전히 다르다. 사격 내에서도 축구와 야구의 차이와 같다. 1년 후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중3 때 권총으로 전향했다. 학교 사격부 전체가 장비 문제로 권총으로 전향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어금니 부분이 비집고 나와 소총이 쏘는데 불편을 주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권총으로 전향해서도 김장미는 승승장구했다. 주니어 국가대표에 뽑혔다. 국내 최강이었다. 세계 유스 무대에서도 김장미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2009년 아시아청소년 대회 개인전과 2010년 세계주니어사격선수권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유스올림픽 공기권총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스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다.

올해부터 성인무대에 참가했다. 지난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성인무대 첫 출전인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뒀다. 4월 런던에서 열린 프레올림픽에선 796.9점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전세계가 그녀를 주목했다. 독일 뮌헨 사격 월드컵에서만 4위를 차지했을 뿐 국제대회만 나갔다하면 입상권에 들었다. 남들이 5~6년에 걸려 완성할 것을 김장미는 단 1년 만에 소화해냈다.

김장미의 천재성은 멘탈에 있다. 소위 말하는 '멘탈갑'이다. 경기 도중 몇 발 점수가 떨어졌을 때 천재성이 보인다. 조금 떨어지는 듯 하다가도 바로 10점대를 연속으로 쏜다. 좀처럼 떠는 일이 없다. 강심장이다. 대표팀 내에서도 할말은 다하는 선수다. 그러면서도 선배들에게는 귀여운 웃음과 애교로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제 시작하는 떡잎

천재적인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 감독이 보호를 하고 있는 것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베테랑' 진종오(33·KT)와 달리 자기관리법이 서툴다. 훈련이나 경기 등 사격과 관련해서는 철두철미하다. 그러나 아직 사회에서는 초보다. 변 감독의 보호정책은 성공했다. 올림픽 전까지 김장미는 평상심을 유지했다. 위기도 있었다. 10m 공기 권총에서 김장미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생애 첫 실패였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감독들과 팀 동료들이 도왔다. 25m 공기 권총을 앞두고 정신적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1일 김장미는 예선에서 승승장구했다. 거침이 없었다. 완사(5분에 5발씩 모두 30발)에서 298점을 쏘았다. 급사(3초에 1발씩 모두 30발)에서도 293점을 보탰다. 총 591점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결선에선 김장미의 강심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김장미가 흔들리는 사이 중국의 첸잉이 역전을 시켰다. 한발이 부담스러운 마지막 시리즈. 김장미는 모두 10점을 넘기며 792.4점으로 1점차 재역전에 성공했다. 경호원을 꿈꾸던 천재 소녀가 세계 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