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 출발이 런던이었다. 그곳에서 첫 역사를 썼다.
지금은 반나절이 소요되지만 64년 전 20박21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배로 지구 반바퀴를 돌았다. 70명으로 이뤄진 한국 선수단에 축구대표팀도 있었다.
한국 축구의 첫 올림픽 도전이었다. 당시 아시아 지역예선이 없었다. 첫 상대는 2012년 런던올림픽 1차전에서 맞닥뜨린 멕시코였다. 조별리그 없이 16개팀이 단판승부로 8강행의 결정됐다. 달콤했다. 멕시코를 5대3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올림픽 본선 첫 무대에서 승리의 환희를 누렸다. 그러나 환희도 잠시, 기량 차는 존재했다.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는 0대12로 참패하며 발길을 돌렸다.
한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사는 울분과 눈물, 땀, 좌절, 재기, 희망이 어우러졌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은 재정문제로 불참했다. 지역예선이 처음으로 도입된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0년 로마올림픽은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또 다시 본선 진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이었다. 그러나 세계 무대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1차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1대6으로 대패한 후 브라질(0대4패)과 아랍공화국(0대10 패) 연달아 대패하며 쓸쓸히 짐을 샀다. 도쿄 대회의 악몽으로 한국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부터 1984년 LA올림픽까지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걸었다.
부진의 터널에서 헤어나온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다.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권을 얻었다. 그러나 홈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소련, 미국과 득점없이 비긴 후 아르헨티나에 1대2로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아시아 지역 예선 통과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운이 겹치면서 조별예선 통과는 쉽지 않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모로코(1대1 무), 파라과이(0대0 무), 스웨덴(1대1 무)과 모두 비겨 조 3위에 그쳤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선 1차전에서 가나에 1대0으로 신승하며 48년 만의 승리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뒷심이 부족했다. 멕시코와 득점없이 비긴 후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대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조별예선에서 2승을 거두고도 골득실차에서 밀려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특별했다. 56년 만의 8강 역사를 다시 썼다. 김호곤 감독(현 울산)이 이끈 대표팀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개최국 그리스와 2대2로 비긴 후 멕시코를 2대1로 꺾었다. 3차전에선 말리와 3대3으로 비겼다. 1승2무, 올림픽 도전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 2대3으로 패했지만 8강행의 물꼬를 텄다. 2008년베이징올림픽에선 카메룬(1대1 무), 이탈리아(0대3 패), 온두라스(1대0 승)와의 대전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했지만 조별리그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8년 만에 다시 8강 진출 기회가 찾아왔다. 1차전에서 멕시코와의 득점없이 비긴 홍명보호는 2차전 스위스를 2대1로 물리쳤다. 승점 4점(1승1무)을 기록한 한국은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각 조 1, 2위가 8강에 오른다. 홍명보호는 가봉을 2대0으로 꺾은 멕시코(승점 4·1승1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골득실차(한국 +1, 멕시코 +2)에서 한 골 뒤졌다.
그 날이 왔다. 한국은 2일 오전 1시(한국시각) 가봉과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비기기만해도 8강에 오른다. 하지만 패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같은 시각에 벌어지는 멕시코-스위스전을 지켜봐야 한다. 멕시코가 스위스를 꺾을 경우 한국은 가봉과 골득실차를 따져야 한다. 가봉의 골득실차가 -2인만큼 1골차 이내로 패하면 8강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두 골차 이상이면 탈락이다. 멕시코가 패하면 4팀이 모두 1승1무1패가 된다. 골득실차와 다득점에이어 승자승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보다 정상적인 경기 운영으로 가봉을 격파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홍명보호의 고지는 조별리그를 넘어 사상 첫 메달이다. 한국 축구사는 그들을 위한 페이지를 준비 중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