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이승엽이 한일통산 500호 홈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500개의 홈런 중 159개가 일본에서 기록한 홈런이다. 또 그날 기록 달성의 장소였던 목동구장에선 6836명의 관중 가운데 약 20명의 일본 팬들이 그 순간을 지켜봤다.
"이승엽 선수는 전세계에서 제일 멋진 홈런을 치는 타자입니다. 힘만이 아니라 허리의 회전으로 만들어내는 홈런은 아름다워요." 목동구장을 찾은 이승엽의 열성팬인 30대 일본여성 2명이 한 말이다.
원래 요미우리 팬이었던 이들은 2006년 이승엽이 지바롯데에서 요미우리로 온 이후 그의 매력에 빠졌다. "솔직히 얼굴은 제 타입이 아닙니다(웃음). 하지만 홈런을 치는 모습과 범타에도 배트를 던져 버리지 않는 자세나 정중하게 인사하는 겸허한 태도에 감동받고 팬이 됐습니다."
원래 모르는 사이였던 둘은 이승엽이 2군에 있던 2010년 야구장에서 만나 알게 됐다. "저희들은 내일(30일) 일본에 가야 해서 오늘이 한일통산 500호를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왠지 좌중간일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생각대로 홈런이 나와서 정말 기쁩니다."
그들은 500개 홈런 중에 제일 기억에 남을 홈런으로 이승엽이 2006년 8월1일 한신전에서 친 한일통산 401호를 올렸다. "그 날은 홈런을 2개 쳤는데 2개째가 끝내기 홈런이었어요. 그 홈런이 제일 인상적입니다."
20명의 일본인 관중 중 10명은 필자가 기획한 한국프로야구 관전투어의 참가자들이었다. 그 중에서 "이승엽에게는 아픈 기억 밖에 없습니다"라고 한 사람은 한신팬인 30대 남성 2명이었다. 그들은 이번 투어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우연히도 둘 다 같은 날 이승엽 경기를 도쿄돔에서 본 경험이 있었다.
"2006년 4월(21일) 한신전에서 친 끝내기 홈런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연장11회말 투스트라이크 이후 투수 구보타의 공이 좋은 코스에 들어갔는데 볼 판정을 받았습니다. 구보타가 불만스런 모습을 보였고, 이승엽은 그 다음 공에 곧바로 좌월 홈런을 쳤습니다. 제가 요미우리전을 보러 가면 항상 이승엽이 홈런을 쳤습니다. 진짜 싫은 존재였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야구를 봤는데 또 다시 이승엽의 홈런을 보고 운명같은 걸 느끼네요. 한신팬로서는 싫은 존재였지만 오늘부터 이승엽 팬이 됐습니다."
이승엽은 경기후 일본팬들에게 "고맙지요.멀리서 오셨는데 마침 홈런을 쳐서 다행입니다. 일본에 있던 8년간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공존했는데 앞으로도 성원해 주는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팬들에게도 남아 있는 이승엽 홈런의 추억. 그날의 한일통산 500호 홈런도 평생 잊지 못할 한방이 됐을 것이다.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