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3, 6대0…, 야구 스코어가 아니다. 골망이 춤을 춘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만큼 녹색 그라운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2012년 6월 K-리그의 키워드는 '전쟁'이다. 달라진 환경이 그들을 움직였다. 승강제라는 거대한 태풍 앞에 무대는 살얼음판으로 변신했다. 전장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곳곳에서 포성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희비가 교차한다. 마침표는 없다. 승자와 패자 모두 새로운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선수와 벤치는 '흥분의 늪'에 빠졌다. 매경기가 결승전이다. 팬들은 손에 땀을 쥐는 혈투가 반갑다.
K-리그 최대 라이벌 FC서울과 수원 삼성이 불을 지폈다. 휘슬이 난무했고, 카드가 쏟아졌다. 거친 그라운드는 라이벌전의 백미였다. 두 구단은 프런트간의 폭력 사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물밑에서 화해를 시도하고 있지만 앙금은 지워지지 않는다.
선두 싸움의 연속이다. 라이벌 전쟁은 진행형이다. 매 라운드 두 팀의 선두 경쟁은 엎치락뒤치락이다. 디펜딩챔피언 전북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국면이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한 후 전열을 재정비한 '닥공(닥치고 공격)' 전북이 24일 6연승을 기록, 올시즌 첫 1위에 올랐다. 수원이 2위다. 선두를 달리던 서울은 3위로 떨어졌다. 차이는 없다. 전북과 수원이 승점 36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골득실차에서 전북(+20, 수원+17)이 앞서 있다. 서울은 승점 35점으로 턱밑에서 추격하고 있다.
벼랑 끝 경쟁이 몰고 온 선물은 화끈한 공격 축구와 골이다. 23일과 24일 이틀간 열린 2012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17라운드에선 무려 29골이 터졌다. 23일 광주는 전남을 6대0으로 대파했다. 전반에만 5골이 쏟아졌다. 24일에도 이어졌다. 이동국(전북)이 해트트릭을 작성한 전북-경남전에서는 8골이 나왔다. 전북이 5대3으로 대승했다. 올시즌 한 라운드 최다골 잔치였다.
무승부 경기도 화끈하다. 서울은 24일 울산과 1대1로 비겼다. 후반 '극한 공격 축구'가 연출됐다. 서울이 10개, 울산이 11개의 슈팅을 쏘아올렸다. 쉴새없이 주고받는 일진일퇴의 공방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경기장을 찾은 2만5653명의 탄성이 쉴새없이 메아리쳤다.
무더위에 공격은 정점, 수비는 저점을 찍었다. 6월초 A매치 브레이크 후 대부분의 팀들이 사흘마다 경기를 치르고 있다. 불볕더위의 기세는 밤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 지치면 집중력이 저하된다. 공격보다 수비 쪽에 타격이 더 크다. 덩달아 골네트가 출렁인다. 전투적인 공격축구가 자리를 잡았다. 킬러들의 계절이 돌아왔다.
스플릿시스템은 클라이맥스다. 포스트시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K-리그는 8월 26일 30라운드를 마지막으로 두 개의 리그로 나눠진다. 1~8위 8개팀이 그룹A, 9~16위 8개팀이 그룹B에 포진한다. 8위와 9위는 천당과 지옥의 사선이다. 그룹 A와 B에서 14라운드를 더 치른 후 우승팀과 강등팀을 결정한다. 그룹을 나누더라도 승점은 연계된다. 그룹A의 1위가 우승이다. 그룹B의 팀이 그룹A팀보다 승점이 높더라도 최종 순위는 9~16위다. 그룹B의 두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중위권 전투도 치열하다. 현재 8위는 대구(승점 25), 9위는 피스컵 일정으로 한 경기를 더 치른 성남(승점 21)이다. 승점 차는 4점이다. 10위 전남과 11위 경남의 승점도 각각 21점, 20점이다. 하위권 팀들은 8강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27일과 28일에는 K-리그 19라운드가 전국 8개 구장에서 열린다. 구도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K-리그는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 후 침체됐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됐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것은 없다. 결국 K-리그도 치열한 전쟁만이 살 길이다. 그래야 팬들이 흥미를 느낀다. 그라운드는 각본이 없다. K-리그는 전쟁 중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