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닝 이터(inning eater)'가 없다.
올시즌 프로야구 특색 가운데 하나는 완투를 하는 선발투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24일까지 치른 251경기에서 완투경기는 9차례 나왔다. KIA 윤석민이 완투승 2번을 올린 것을 비롯해 두산 니퍼트, 한화 김혁민, 롯데 사도스키 등이 완투를 한 차례씩 기록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같은 시점에서 각각 11번의 완투가 기록됐다. 별 차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올시즌처럼 순위 경쟁이 치열할 때 선발투수가 완투를 한 번 해 주면 마운드에 크나큰 힘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완투는 차치하더라도 7이닝 이상을 꾸준하게 던지는 선발투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즉 제대로 된 이닝 이터를 보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올시즌 뚜렷한 트렌드 중 하나인 이닝 이터 '소멸'을 파헤쳐 봤다.
▶완투형 선발이 사라졌다
올시즌 선발경기당 투구이닝이 7이닝 이상인 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완투형 선발투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사라졌다기 보다는 이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게 미미해졌다. 대표적인 완투형 선발은 한화 류현진과 KIA 윤석민이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올시즌 부진과 불운, 부상을 동시에 겪고 있다. 류현진은 등근육 담증세로 한 차례 2군에 다녀왔다. 윤석민도 팔꿈치 부상으로 2군서 재활중이다. 그렇다고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외국인 투수들 중에서도 완투형 선발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발경기당 평균 투구이닝은 니퍼트가 1위다. 니퍼트는 14경기 선발에서 97⅓이닝을 던져 게임당 6.95이닝을 기록했다. 선발로 등판해 평균 7이닝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롯데 유먼 6.78이닝, LG 주키치 6.71이닝, 넥센 나이트 6.62이닝 등 각팀 에이스급 투수들 모두 7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류현진과 윤석민은 각각 6.50이닝, 6.15이닝으로 지난해에 비해 이닝 소화 능력이 부쩍 줄었다.
▶컨디션 관리는 투수가 한다
전반적으로 선발투수들의 완투에 대한 욕심도 크게 줄었다. 모 구단의 선발투수는 이에 대해 "요즘 투수들은 완투보다는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리하게 완투를 하면 다음 경기에 분명 영향이 있다. 내려가겠다고 먼저 벤치에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부상에 대한 우려다. '겉멋보다는 실속'을 챙기겠다는 의미다. 무리한 투구로 인해 어깨나 팔꿈치 부상을 입을 경우 가장 손해보는 쪽은 결국 선수 자신이다. 여기에 80~90년대와 달리 요즘 마운드 운용은 철저하게 분업에 의해 이뤄진다. 선발-중간-마무리의 역할이 점점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다. 각 구단 감독들도 하나같이 "선발이 6이닝만 확실하게 던져주면 마운드 운용이 쉽다"고 말한다. 즉 선발이 6이닝 정도만 책임지면 불펜진을 총가동해 경기를 쉽게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선발 마운드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
완투형 선발투수는 줄었지만 전체 선발투수들의 수준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시즌 8개팀 선발투수들의 평균 투구이닝은 5.55이닝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의 5.18이닝보다 0.37이닝이 늘었다. 즉 선발투수들이 지난해보다 ⅓이닝 정도를 더 던졌다는 의미다. 8개팀 중에서는 두산이 5.87이닝으로 선발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이어 삼성이 5.78이닝, 넥센이 5.70을 각각 기록했다. 올해 선발진이 강한 팀으로 두산 삼성 넥센이 꼽히는데 기록으로도 분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주목할 것은 8개팀 모두 선발투수 평균 투구이닝이 5이닝 이상이라는 점이다. 불펜 의존도가 높은 SK는 24일까지 치른 62경기에서 선발이 310이닝을 책임져 게임당 평균 5.01이닝을 기록했다. SK의 지난해 이맘때 선발 평균투구이닝은 4.46이닝이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