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록 실패의 후폭풍이 '퍼펙트맨' 이용훈(롯데)에게도 미칠까.
이용훈이 22일 7⅓이닝 동안 단 한명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퍼펙트피칭을 했었다. 이후 최동수에게 안타를 맞고 퍼펙트 게임에 실패했고, 안타 2개를 더 맞고 1점을 준 뒤 8회를 마무리하고 등판을 마쳤다. 퍼펙트게임은 놓쳤지만 시즌 7승의 기쁨을 안았다.
문제는 그 다음 등판이다. 과거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목전에서 날린 투수들은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았다. 직후 등판에서 부진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주키치(LG)와 올해 윤석민(KIA)이 가까운 사례. 주키치는 지난해 8월 5일 잠실 한화전서 8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써내려갔다가 이양기에에 중전안타를 내주고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만 챙겼다. 바로 다음 등판인 8일 후 잠실 롯데전서 4⅔이닝 동안 7안타를 맞고 4점을 주고 5회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됐다.
윤석민은 불과 한달 반 전인 5월 11일 광주 두산전서 8회 1사까지 사구 1개만 내주고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쳤다. 달성하게 되면 2000년 송진우(한화) 이후 12년만에 나오는 노히트노런이었다. 그러나 손시헌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하며 노히트노런은 깨졌고, 완봉승에 만족해야 했다. 6일후인 대구 삼성전. 다시 한번 대기록에 도전해주길 바라는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윤석민은 7안타에 4사구 3개를 내주는 최악의 피칭으로 6실점을 하고 단 3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와야했다. 당시 자신의 시즌 최소 이닝 투구와 최다실점 기록이었다.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에 도전했을 정도라면 당시 페이스는 최상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불과 며칠후 다음 등판에서 오히려 더 망가지기 쉬운 이유가 뭘까. 정신과 체력 모두 다음 등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뜻이다.
양상문 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정신적인 면에 무게를 뒀다. 두 가지의 마음이 다음 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너무 커진 자신감이다. "대기록을 달성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좋은 피칭을 했기 때문에 잘 던졌던 그 감정이 다음 등판을 준비하는 내내 남아있게 마련"이라는 양 위원은 "예전과 같이 준비했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안이한 마음 상태에서 등판할 수 있다. 또 그전에 실패했던 것에 대해 욕심을 내면서 자신의 리듬을 오히려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대기록 달성 실패의 허탈감이 작용할 수도 있다. 양 위원은 "(퍼펙트나 노히트노런이 걸린 경우)5회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사람인 이상 의식을 할 수 밖에 없다. 5,6회 쯤에 기록 달성이 실패하게 되면 오히려 편하게 던질 수도 있지만 8회나 9회에 기록이 깨진다면 그 허탈감이 클 수 있다. 그런 허탈감, 아쉬움 탓에 다음 경기 준비를 소홀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체력적인 부담이 올 수도 있다. 대기록에 한발한발 다가갈수록 그것에 신경쓰게 되고 당연히 투구에 불필요한 힘을 쓰게 된다. 하위타선과의 대결은 맞혀잡는 피칭으로 완급 조절을 해야하지만 상위타선 상대하듯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투구수라도 정신적, 체력적인 소모는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다음 경기엔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평소보다 확 떨어지는 구위를 보일 수 있다.
대기록 실패의 후유증을 겪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윤석민은 지난해 7월 15일 대구 삼성전서 5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다가 6회 볼넷을 내주고 7회엔 강봉규에게 안타를 허용해 퍼펙트와 노히트노런을 한꺼번에 놓친 적이 있다. 그러나 다음 등판인 21일 대전 한화전서는 7이닝 1실점, 30일 목동 넥센전서는 무4사구 완봉승으로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앞서 지적했듯 빠른 타이밍에 기록이 깨져 이후 불필요한 힘을 쏟지 않고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한화 정민철의 경우도 그렇다. 5월 23일 OB(현 두산)와의 경기서 8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하고 있었고 다음 타자인 심정수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런데 원바운드 된 공을 포수 강인권이 뒤로 빠뜨려 심정수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1루를 밟았고 그것이 OB의 처음이자 마지막 출루였다. 퍼펙트를 놓쳤지만 역대 9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이때는 퍼펙트게임을 놓쳤다는 아쉬움 보다는 그래도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달성했다는 안정감이 계속 이어져 다음 등판인 28일 롯데전서 8이닝 10탈삼진에 2실점의 호투를 했고, 이어 6월 3일 현대전서는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올시즌 롯데의 실질적 에이스로 떠오른 이용훈의 경우 이번 퍼펙트게임 실패가 '멘붕(멘탈붕괴)'으로 이어질까. 아니면 더 좋은 투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까. 이용훈의 다음 예상 등판일은 30일 잠실 두산전이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