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의 키스톤 플레이어 김선빈-안치홍.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절친한 한살 터울의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성격은 정 반대다.
안치홍이 생각이 많은 햄릿 형이라면, 김선빈은 재빨리 머리 속을 비우는 돈키호테 형이다. 김선빈은 "가끔 치홍이 표정이 찡그러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얼굴 펴고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실책이나 범타 등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둬봐야 플레이에 긍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
반대로 안치홍은 쉽게 툴툴 털어내는 김선빈이 신기할 따름이다. 안치홍은 "야구 선수 중에 가장 잘 털어버리는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며 김선빈을 지목했다. 안치홍은 "신기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다음 플레이 할 때는 신경 안쓰는 것 같아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훈련을 마친 김선빈은 안치홍의 증언을 순순히 시인했다. "사실 아쉬웠던 일이 있더라도 다음날 아침까지는 거의 잊어버리는 편이죠."
잘 잊어버리기. '무념'은 야구 잘 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니다. 하지만 김선빈의 성격이 원래부터 이랬던 게 아니다. 과거 그는 안치홍 이상가는 햄릿 형이었다.
"고등학교(화순고) 때만해도 소심했어요. 그런데 프로에 온 뒤로 언젠가부터 변했죠."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을까. 본인 조차 정확히 감지하기 힘들 정도의 지구 자전 속도의 변화. 신인 시절 플라이볼 캐치 실수 당시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때요? 우와, 완전 소심했죠. 야구를 그만 두려고 했고, 진짜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스무살 청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팠던 기억. 지우고 싶은 악몽의 기억이 김선빈의 뇌구조를 바꿔놓았는지 모른다. 본인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때 정말 힘들었어요. 죽고 싶을 정도였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않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 본능이 있다. 애써 빨리 잊으려 노력하면 그 자체가 습관이 되기도 한다. 큰 아픔을 겪은 사람이 매사에 담담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김선빈의 바뀐 성격은 클러치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김선빈은 "주자 없을 때보다 1사 2,3루 등 주자가 있을 때 마음이 훨씬 더 편하다"고 말한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그는 주자가 있을 때 타율(0.320)이 주자 없을 때(0.310)보다 높다. 득점권 타율도 0.344로 시즌 타율(0.315)보다 높다.
단, 김선빈은 "1사 찬스는 마음이 편한데 2사 후 찬스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유는 "내가 죽으면 이닝이 끝나 버리기 때문"이란다. 얼핏 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 .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작은 거인' 김선빈, 그가 사는 방식이 있을 테니까….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