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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장원삼-배영수 사례로 본 투수들의 생존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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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승부의 정글에서 그들의 각자의 생존법을 찾았다.

현역 시절 대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KIA 선동열 감독이나 넥센 김시진 감독 등은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한다. "투수가 늘 좋은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는 없다. 안 좋은 컨디션에서도 상대타자를 이겨낼 수 있어야 진짜 좋은 투수다."

냉정한 승부의 현장에서 "몸이 안좋다"거나 "갑자기 공이 안 들어간다"는 식의 변명은 필요없다. 대신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을 살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자세다. 최근 삼성 선발 장원삼과 배영수의 호투는 바로 이런 간단하고도 명확한 원리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벤치의 와인드업 투구 지시를 거부한 장원삼의 결단

좌완선발 장원삼은 올 시즌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5일 현재 8승 3패 평균자책점 3.44로 팀내 다승 1위를 기록중이다. 장원삼은 지난 22일 목동 넥센전에서도 선발로 나와 7이닝 동안 3안타 4볼넷 7삼진으로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8승째를 수확하며 팀의 3연승을 이끌어냈다.

올 시즌 들어 장원삼은 구위와 경기운영면에서 지난해에 비해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적에서 확 드러난다. 지난해 총 25번의 선발 등판에서 8승8패 평균자책점 4.15에 그쳤던 장원삼은 올해 13번의 등판에서 벌써 지난해와 같은 8승을 수확했다. 이런 장원삼에 대해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런 추세라면 올해 14~15승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확실히 요즘에는 에이스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며 신뢰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장원삼의 이날 승리의 뒤에는 초반 컨디션 난조를 이겨낸 자신만의 결단이 숨어있었다. 이날 장원삼은 1회 1사 후 서건창에게 내야안타와 도루를 허용하고, 유한준에게 좌전안타를 맞아 1사 1, 3루의 위기에 빠졌다. 유난히 제구가 되지 않았다. 장원삼은 "이상하게 힘이들면서 공이 뜨더라. 허벅지가 막 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최대 위기였다"고 밝혔다.

타석에는 넥센 4번타자 박병호가 들어섰다.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진 장원삼의 이상증세를 눈치 챈 벤치는 세트포지션이 아닌 와인드업 자세로 공을 던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원삼은 "공에 힘이 없어보이니 주자를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힘을 모아 던지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고 말했다. 오히려 와인드업 자세에서 힘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챈 장원삼은 벤치의 지시와 달리 세트포지션으로 구위를 끌어올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구위가 순간적으로 살아난 장원삼은 박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끝에 결국 1회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스스로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상태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은 것이었다.

▶슬라이더 대신 비장의 투심, 배영수의 선택

배영수 역시 올 시즌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지난해 25경기에서 6승8패 평균자책점 5.42에 그쳤던 배영수는 12경기에서 6승3패 평균자책점 3.48로 성적 반전을 이뤄내고 있다. '돌아온 에이스'의 호투는 삼성이 6월 상승세를 타는 원동력 중 하나로 작용했다.

배영수도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승리를 따냈다. 2007년 초 팔꿈치 수술 후 5년 만에 최다투구수(119개)를 기록한 배영수는 6⅔이닝 7안타 3볼넷 5삼진으로 5실점(2자책점)하며 시즌 6승째를 거뒀다. 7회 삼성 내야진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2자책점만으로 좀 더 긴 이닝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날 배영수 역시 경기중 난조를 겪었다고 한다. 배영수는 "이상하게 이날 등판에서는 슬라이더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간 슬라이더로 꽤 효과를 보고 있었는데, 경기 중에 갑자기 잘 안통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영수는 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베테랑다운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슬라이더와 비슷한 스피드를 내면서 꽤 변화도 심한 투심 패스트볼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배영수는 "예전에 오치아이 코치님께 배워둔 것이었는데, 그간 잘 활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슬라이더가 안 통하자 투심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의 무기였다"고 말했다. 배영수의 투심은 넥센 타자들에게는 생소한 레퍼토리다. 그 덕분에 배영수는 위기의 순간 투심을 활용해 상대타자를 땅볼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원삼과 배영수의 사례는 결국 투수들에게 평정심과 순간적인 위기대처능력, 그리고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는 비장의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차가운 전쟁터에서는 결국 이런 치밀함만이 생존의 비책이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