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젊은 선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도 올림픽에서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
8년만에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에는 '아줌마'들이 있다. 동기생들은 하나둘씩 은퇴를 했거나 준비하고 있지만 이 아줌마들은 젊은 선수들과 함께 '런던정벌'을 외치고 있다. 무서운 아줌마들인 이숙자(32)와 정대영(31·이상 GS칼텍스)을 만났다.
▶3년만 하면 시집갈 돈 모은다기에
이숙자에게 올림픽은 말 그대로 꿈이었다. 1998년 실업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현대건설에 입단하면서 주전 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런데 IMF사태가 터졌다. 선경이 해체됐다. 강혜미가 현대건설로 왔다. 백업 세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실업 생활 3년이면 시집갈 돈은 모은다을 밑천삼아 버티고 또 버텼다. 고진감래라는 말을 믿었다.
2005년 강혜미가 은퇴하면서 이숙자에게 기회가 왔다. 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언제나 후배인 김사니(30·흥국생명)에게 밀렸다. 이번 올림픽 예선전에서도 그녀에게 온 자리는 백업 세터였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올림픽 진출을 위해 뒤에서 힘을 보탰다. 올림픽 진출을 확정짓던 날 그녀는 제일 먼저 가족이 떠올렸다. 이숙자는 "배구를 했던 아버지를 포함해 가족들이 모두 체육을 좋아한다. 무덤덤해하지만 다들 기뻐하더라"고 했다.
▶아테네의 추억, 베이징의 빚
정대영에게 올림픽은 추억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다.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단다. 그저 '올림픽에 가는구나'는 생각 뿐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두고두고 마음의 빚이었다. 예선전을 앞두고 다쳤다. 대표팀에 나갈 수 없었다. 주전 센터가 없는 대표팀의 성적이 좋을리가 없었다. 꼭 자신때문에 올림픽 티켓을 놓친 것 같았다.
이번 올림픽은 간절했다. 2008년의 빚을 갚고 싶었다. 김형실 감독이 불렀다. 그때의 빚을 꼭 갚고 싶었다. 올림픽예선전에 투혼을 불살랐다. 무릎이 좋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면 바로 치료실로 향했다. 침을 맞고 뜸을 뜨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올림픽진출이 확정되던 날 그녀 역시 가족을 떠올렸다. 집에 있는 세살배기 딸과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정대영은 "자주 못보는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중에 딸이 크면 엄마가 올림픽에 나갔다는 사실을 자랑할 것을 생각하지 뿌듯하다"고 했다.
▶13년 지기의 런던
이숙자와 정대영은 1999년부터 한솥밥을 먹었다. 현대건설에서부터 손발을 맞추었다. 2007년 GS칼텍스로 함께 이적했다. 소속팀에서는 환상의 콤비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손을 맞출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정대영은 주전이지만 이숙자는 백업이다. 둘 다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다. 이숙자는 "승부의 분수령에서 내게 기회가 온다면 (정)대영이를 활용할 것이다. 눈만 봐도 무엇을 할지 알 수 있는 사이다"고 했다. 정대영 역시 마찬가지다. 정대영은 "대표팀에서 이렇게 손을 맞춘 것은 거의 처음이다. 그동안 시기가 계속 엇갈렸다. 런던에서는 13년 지기의 노련미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또 하나의 목표도 있다. 런던에서 딴 메달을 가족들에게 걸어주는 것이다. 이숙자는 "결혼한지 2년이 됐지만 남편과 보낸 시간이 별로 없다. 고생해주고 나를 기다려준 남편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 물론 부모님도 함께다"고 했다. 정대영도 "올림픽에 나간 엄마가 됐는데 나간 김에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고 싶다. 딸에 목에 걸어주는 꿈을 꾸곤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일본)=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