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현상만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대반격이 가능하다.
LG가 올시즌 처음으로 5할 승률 밑으로 떨어졌다. 시즌 개막 후 63경기, 78일 만이다. 공교롭게도 마무리 봉중근이 블론세이브에 분을 못이기고 소화전함을 내리친 22일부터 연패가 시작됐다. 올시즌 '뫼 산(山)'자 그래프를 그리며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오르내리다 처음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실 지금까진 잘 버텨왔다고 보는 게 맞다. 객관적인 전력을 따져봐도 LG가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5할 승률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건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김기태 감독은 "언젠간 5할 승률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이후를 버텨낼 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땐 전력 이탈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다. 이진영의 햄스트링 부상이 발생하긴 했지만, 뒷문을 걸어잠그는 마무리투수에 비하면 야수의 빈자리는 크지 않다.
일단 김 감독은 유원상을 '임시 마무리'로 선언했다. 올시즌 불펜으로 보직을 바꾼 뒤 140㎞대 후반의 묵직한 직구와 140㎞를 넘나드는 고속슬라이더로 '계투 체질'임을 입증한 그다.
올시즌 36경기서 2승2패 3세이브 14홀드에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한 유원상은 분명 봉중근의 대체자로는 가장 적합하다. 봉중근이 지난해 받은 수술로 최근까지 연투가 불가능했기에 유원상이 마지막을 책임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유원상에게 조금씩 과부하의 조짐이 보인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등판이었지만, 20일부터 22일까지 3일 연속 등판해 1이닝-2⅓이닝-1⅓이닝을 던졌다. 봉중근이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23일 잠실 롯데전서는 유원상 정도의 '믿을맨'이 등판했어야 하지만, 투수가 없었다. LG 코칭스태프는 유혹을 참아내며 유원상을 지켰지만, 결국 경기는 뺏겼다.
유원상은 순수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48⅓이닝을 소화했다. 본인은 잦은 등판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최근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진 모습이다.
여파가 없을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직구 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무기인 슬라이더 위주로 공을 던지는 날도 늘어나고 있다. 투수가 변화구로 정면승부를 피하기 시작하는 걸 달리 말하면, 상대 타자에게 직구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구속이 느려 처음부터 기교파 투수인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쳐도, 파워피처는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유원상은 지난 12일 잠실 SK전에서 19개의 공을 던졌다. 직구는 고작 4개. 이날 유원상은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4실점하며 팀 승리를 날려버렸다. 좋지 않은 징조를 보인 건 분명하다.
과부하를 피하기 위해선 다른 투수들이 잘 해줘야만 한다. 하지만 봉중근-유원상 조합 만큼 강력해 보이지는 않는다.
유원상 만큼 믿을 만한 투수는 이동현이다. 그 역시 과부하 조짐이 보인다. 지난 5월28일 1군에 다시 올라온 뒤 12경기 무실점 행진을 벌이다 지난 24일 잠실 롯데전에서 2이닝 3실점으로 무너졌다. 더블 스토퍼 체제를 고려해볼 만도 했지만, 유원상 앞에 던지는 역할을 수행해줘야할 것으로 보인다. 봉중근 대신 1군에 올라온 신정락과 임찬규는 컨트롤이나 경험 면에서 아직 부족함이 보인다.
김기태 감독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5할 본능' 그 이후를 대비해왔다. 하지만 봉중근의 공백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당장의 승리 때문에 또다른 투수들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유원상을 1이닝 마무리로 쓰고, 철저히 투구수 관리를 시켜줘야 봉중근 컴백 이후, 대반격을 노릴 수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