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녀석 스카우트 하려고 광주에도 몇 번 내려갔었지."
넥센 김병현이 20일 잠살 두산전에서 한국무대 복귀 후 첫 승을 거두며 활짝 웃었다. 선발등판 5번 도전 만에 이른 값진 승리. 하지만 김병현이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그래서 1회초 터진 이 선수의 결승타가 더욱 빛이 났다.
2012 프로야구 신인왕 레이스의 판도, 이 선수가 주도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넥센에서 '신고선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내야수 서건창이다. 올시즌 56경기에 출전, 타율 2할9푼1리에 19타점 8도루를 기록중이다. 조금 부족한 면은 있지만 2루 수비도 무난하다. 뾰족한 신인 재목들이 없는 탓도 있지만 경쟁자를 찾을 수 없는 독보적 활약이다. 1군 경기 기록이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딱 1경기에 출전한 것인 만큼 신인왕 선정 때마다 논란이 되는 '중고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이런 서건창의 활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롯데 양승호 감독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때는 2007년. 양 감독이 고려대 감독직을 맡은 첫 해였다. 선동열 KIA 감독을 필두로 김종국, 김상훈, 최희섭 등 광주일고 출신의 야구선수들이 모두 고려대에 진학했을 정도로 양교 사이에 관계는 끈끈했고 정기적으로 연습경기를 갖는 등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때 양 감독의 눈에 띈 선수가 바로 서건창이었다. 3번 타자로 타격 자질도 뛰어났고 내야 수비도 또래 중에는 최고 수준이었다. 한 마디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양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꼭 고려대에 스카우트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고 말했다.
곧바로 양 감독의 설득 작업이 이어졌다. 서건창의 집이 있는 광주도 몇 번이나 찾아갔다. 하지만 결국 스카우트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정이 있었다. 양 감독은 "건창이가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보다는 프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프로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양 감독은 "결국 어려서부터 싹이 보였던 선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건창에게 직접 당시 얘기를 들어봤다. 서건창은 "솔직히 대학에도 가고 싶었다. 다른데도 아니고 고려대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 고려대 유니폼을 입은 선배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양 감독의 말대로 어머니를 조금 더 잘 모시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자신도 있었다. 그는 "프로 무대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서건창은 양 감독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서건창은 "고등학교 때 연습경기를 오시면 플레이 하나하나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LG에 있을 때도 고려대 연습경기를 가면 꼭 따로 불러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는 사연을 공개했다. 이어 "최근에도 경기장에서 뵈면 크게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