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력'이란 단어는 참 무섭다. 다른 객관적 요소를 무시해버린다. 이번에도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가 그렇다.
이탈리아는 '전통의 강호' 혹은 '토너먼트의 강자'로 불린다. 언제나 끈끈한 모습으로 마지막에 웃었다. 전문가들이 만든 객관적 전력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유로2012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19일(한국시각) 폴란드 포즈난 시립경기장에서 열린 유로2012 C조 최종전에서 아일랜드를 2대0으로 꺾었다. 1승2무가 된 이탈리아는 1승1무1패에 머문 크로아티아를 제치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선전한 크로아티아는 마지막 순간에 눈물을 뿌렸다.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차이는 딱 하나다. 생존본능이다. 강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힘이다. 이탈리아의 힘은 벼랑 끝에서 언제나 극대화된다. 이탈리아에게 아일랜드와의 경기는 쉽지 않은 경기였다. 반드시 이긴 후 반대쪽 경기 결과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전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와의 무승부 담합설마저 흘러나왔다. 이런 경기는 부담감으로 경기를 풀어가기 어렵다. 더욱이 상대는 누구보다 이탈리아를 잘 아는 트라파토니가 이끄는 '아이리시 빗장수비' 아일랜드였다.
이탈리아는 늘 그랬듯이 자기만의 축구를 했다.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있는 변화로 난관을 탈출했다.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한 이탈리아는 공격적인 전술로 아일랜드를 상대했다. 후반 체력저하로 어려움을 겪을때면 특유의 빗장수비로 극복해냈다. 카사노와 발로텔리의 골을 묶어 2대0 승리를 거뒀다.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이탈리아가 필요한 승점 3점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세계 최강'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0대1로 무릎을 꿇었다. 스페인 선수들과 감독, 관계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냈지만, 크로아티아가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승점이었다.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번대회가 열리기 전 이탈리아에겐 악재가 가득했다. 승부조작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왼쪽 윙백 크리시토는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카사노와 함께 프란델리식 패싱축구의 핵심이었던 로시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대진운도 좋지 않았다. '디펜딩챔피언' 스페인, '동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 '트라파토니가 이끄는' 아일랜드까지 만만치 않은 팀과 한조에 속했다. 자칫하면 조별예선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스페인전에서 3-5-2 카드를 멋지게 성공시켰으며, 크로아티아전에서는 피를로의 프리킥 한방으로 무승부를 이끌었다. 아일랜드전에서 다시 한번 생존본능을 과시한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 우승까지 3걸음을 남겨놓았다. 돌이켜보면 이탈리아는 최강이 아닐때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때도 그랬고, 2006년 독일월드컵때도 그랬다. 그 전통이 쌓여진 이탈리아는 '저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번대회에도 그만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