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콜업, 만감이 교차했다."
토요일이던 지난 16일. 최향남(41)은 상동에 있었다. 롯데와의 퓨처스리그 경기를 치르던 그는 짐을 싸서 1군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부랴부랴 군산 행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KIA 재 입단 이후 퓨처스리그에서 치른 실전은 고작 3경기(7이닝 6안타 2실점). 1년 이상 공백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콜업이었다. LG 류택현과 함께 국내 최고령 투수임을 감안하면 속도감이 더 느껴지는 1군 무대 합류.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감회가 새로웠다. 미국에 있을 때 빅리그 콜업을 기다리던 생각도 나고…."
1군에 합류하기 무섭게 최향남은 마운드에 섰다. 17일 군산 월명구장에서 열린 LG전. 6-0으로 리드하던 9회초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롯데 시절인 2008년 10월 이후 무려 3년 8개월여만의 복귀. KIA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 것은 2005년 9월 롯데전 이후 약 6년 9개월만이다.
1이닝 동안 12개의 공으로 2안타 무실점. 출발은 불안했다. 선두 박용택 정성훈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무사 1,2루에서 이병규와 최동수 등 베테랑 타자들을 가볍게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며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
관록의 백전노장의 귀환. 평가는 유보적이다. 이날 최향남이 기록한 포심 패스트볼 최고 스피드는 시속 약 14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대담했다. 4년여만의 복귀한 투수라고 보기 힘들었다. 긴장하는 기색 없이 배짱이 넘쳤다. 그는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슬라이더 딱 하나였는데 그나마 거의 보기 힘들었다. 과거 롯데 시절 별명이던 '향운장'답게 투구 템포가 빨랐고, 정면 승부를 즐겼다. 4타자를 상대로 12개의 투구수. 1타자 당 평균 3개였다.
시즌 중 영입된 그는 일종의 '임시직' 1군 선수다. 크게 앞선 상황에 등판했지만 이날 경기는 최향남 본인에게는 중요한 테스트 무대였다. 선동열 감독과 코치들이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체크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해 보일만큼 빠르지 않은 패스트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아슬아슬했다. 첫 등판을 마치고 내려온 그에게 선 감독조차 "왜 변화구를 던지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최대한 많은 능력을 보여줘 눈도장을 찍어야 했던 최향남. 그는 왜 변화구를 던지지 않았을까. "마운드에 오르면서 밸런스만 생각했다. 좋을 때(트리플A 시절)의 밸런스를 완전하게 찾는 것이 우선 과제다.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 있는데 아직은 아니었다." 밸런스가 잡히면 패스트볼 볼끝이 살아나고 그래야 변화구도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스피드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트리플A(2006년 클리블랜드 산하 버팔로 바이슨스) 시절에도 스피드는 140㎞ 정도였다. 다만 밸런스만 잡히면 패스트볼 볼끝의 힘만으로도 타자와 정면 승부가 가능하다."
머지 않았다. 최향남의 첫 등판을 지켜본 선동열 감독은 "볼끝에 힘이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최향남은 향후 2~3경기 쯤 더 편한 상황에서의 불펜 등판을 통해 필승조 승격 테스트를 받게 된다. 최향남은 "변화구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다음 등판에서 보여줄 투구패턴의 변화. 어떻게 달라지느냐 여부에 따라 KIA 불펜진의 밑그림도 달라진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