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오고 싶지 않았어요."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그날의 악몽은 KIA 김선빈의 뇌리에 생생하기만 하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끔찍했던 순간이 떠올라 등에 식은 땀이 흐를 정도다. "군산에는 진짜 오기 싫었어요. 자꾸 또 안좋은 일이 생길거 같아서요." 김선빈은 1년전 끔찍한 일을 당했던 군산구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작은 거인'이 '군산구장 트라우마'에 잔뜩 얼어붙고 말았다.
지난해 7월 5일은 현재까지 김선빈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자,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전까지만 해도 김선빈은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붙박이 2번타자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7월 4일까지 70경기에 출전한 김선빈은 타율 2할9푼6리(240타수 71안타, 3홈런 38타점 46득점)를 기록하며 팀내 타율 4위, 타점 3위, 득점 3위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5일 군산구장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수비 도중 상대 외국인타자 알드리지가 친 직선타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는 사고를 당해 그게 다치고 말았다. 피를 철철 흘리며 구급차에 실려간 김선빈은 윗잇몸뼈와 콧등뼈가 부러져 긴급 수술을 받았고, 이후 8월 16일 광주 롯데전에 복귀할 때까지 한 달 이상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1군에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 정면타구에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선타구에 맞아 다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다행히 김선빈은 오래 지나지 않아 이를 극복해냈고, 다시 전처럼 안정적인 수비솜씨를 보여줬다.
그렇게 트라우마는 극복된 듯 했다. 그러나 잠재의식 속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있었다. 끔찍한 기억을 심어준 그 현장에 오자 김선빈의 트라우마가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KIA는 15일부터 LG와 군산구장에서 3연전을 벌이는데, 김선빈은 며칠 전부터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보여왔다. 지난 14일 목동 넥센전을 앞두고서도 "내일부터 군산에서 경기해야 하는데, 사고 날 때 생각이 나서 두려워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팀내에서 유일하게 전경기 출전을 하고 있는 주전 유격수이자 붙박이 2번타자로서 해야할 몫이 크기 때문. 김선빈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이날 LG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트라우마의 악영향은 예상 이상으로 컸다. 김선빈은 이날 평소와 달리 공수에서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는데, 공격보다는 수비에서의 집중력 저하가 더 큰 문제였다. 이날 김선빈은 공식적으로는 실책 1개를 기록했지만, 수 차례 실책성 수비를 했다.
우선 3-0으로 앞선 4회초 1사 후. LG 3번타자 이병규(7번)가 친 타구는 김선빈의 머리 위쪽으로 높이 떠올랐다. 평소라면 좌익수 쪽으로 뛰어가 잡을 수 있는 타구였지만, 김선빈을 이를 놓쳐 2루타를 만들어주고 만다. 이어 5회에도 무사 1루에서 유격수 쪽으로 온 병살타성 타구를 정확히 잡지 못하는 바람에 선행주자만 잡았다.
한번 집중력이 떨어지자 계속 어설픈 모습이 나왔다. 결국 김선빈은 1사 1, 2루에서 LG 대타 정성훈이 친 평범한 병살타성 타구를 또 더듬는 바람에 모든 주자를 살려줬다. 이 실책 후 김선빈은 곧바로 윤완주와 교체돼 벤치로 물러났다. 코칭스태프도 김선빈이 평소와 같은 심리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었다. KIA는 앞으로 8차례의 군산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김선빈이 '군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남은 8경기는 매우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군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