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멋진 걸 어쩌랴. 김광현의 투구폼은 확실히 야구의 로망이다.
SK 김광현이 14일 LG전에서 복귀후 3연승을 기록했다. 3경기 합계 16이닝 1실점이란 기록 보다도 한장의 현장 사진이 오히려 눈에 쏙 들어왔다. '김광현의 복귀와 함께 현역 최고의 와일드한 투구폼도 돌아왔구나'란 느낌이다.
▶김광현 투구폼, 역동 그 자체다
이날 경기에서 김광현은 포심패스트볼 최고 147㎞, 무엇보다 슬라이더 최고 141㎞(중계화면 기준)를 찍으며 스피드를 과시했다. 현장 사진기자가 보내온 힘이 넘치는 한 컷이 눈에 띄었다.
바로 위의 사진이다. 김광현의 오른쪽 다리는 힘차게 타자쪽으로 쭉 뻗어있으며 글러브를 낀 오른쪽 팔은 역동적으로 머리 위쪽에 놓여있다. 축족이었던 왼쪽 다리는 투수판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증거인마냥 위로 솟아있다. 평소 투수가 공 한개 던지는 게 대수냐는 야구팬들은 김광현의 얼굴 표정을 봤으면 좋겠다. 공 하나 던질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게 표정으로 드러난다.
반갑다. 현역 투수 가운데 이 정도로 역동적인 투구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김광현은 키 1m87로 속칭 '기럭지'가 되는 투수다. 그키에 자신만의 독특한 파워 피칭을 하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에 담겼을 때 그 어떤 투수 보다 멋진 피칭폼이 나온다.
▶역동성=김광현, 모범답안=류현진
이날 밤, 모 코치에게 "김광현 외에 어떤 투수가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유명한가"를 질문했다. 코치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김광현 만큼 역동적인 투구폼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사실 단점이 있는 투구폼이라고 한다. 코치는 "김광현은 피칭때 오른쪽 어깨가 기울면서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케이스다. 부상 위험성도 있는 폼이다. 하지만 고교 시절부터 그게 몸에 뱄기 때문에 계속 익숙하게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높이가 좋다. 그래서 공을 놓는 타점도 훌륭하다. 김광현 같은 팔 각도를 보이는 왼손투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던지고 나서 본인의 오른쪽으로 무너지는 경향은 있다. 하지만 어쩌랴. 거의 모든 왼손투수들이 파워 보다는 제구력이 담보되는 얌전한 폼을 채택하는데, 김광현마저 따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코치는 "이상적인 투구폼은 한화 류현진이다. 물론 류현진도 본인 필요에 따라 전력 피칭을 할 때는 역동적인 투구폼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힘의 배분이나 밸런스에선 류현진 폼이 좋다. 류현진의 폼은 미국 코치들도 인정하는 폼이다"라고 말했다.
▶부상 위험과 피칭폼의 관계
김광현의 투구폼은 확실히 부상 위험성이 있어 보인다. 그처럼 던지는 팔을 확 제꼈다가, 높은 곳으로 가장 큰 회전을 그리며 내뻗는 방식은 자칫하면 관절에 무리가 올 수 있다.
많은 투수들이 프로 초창기에 자신만의 와일드한 폼을 갖고 시작했다가 결국엔 다리 높이가 낮아지고 팔스윙 폭이 작아지고 역동성이 줄어드는 건 이유가 있다. 스피드를 줄이는 대신 제구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학습하면서 원시적이며 전투적인 투구폼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메이저리그의 파워피처들을 봐도 김광현 만한 역동적인 폼은 잘 없다. 상대적으로 신체조건이 좋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상하체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도 상체 힘으로 커버한다. 자유족을 턱하니 내딛으며 받쳐놓고, 그후 밋밋하게 팔 힘으로만 던지는 것 같은데도 시속 95마일(153㎞)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이 많다. 물론 그들 가운데 에이스급 투수들은 밸런스도 뛰어나다.
동양인 투수들이 미국인 투수처럼 던졌다가는 투구수를 채울 수 없고 부상 위험도 크다. 간결한 폼과 밸런스가 더 강조된다.
▶임창용 박찬호 김병현의 사례
단언컨대, 그간 직접 본 왼손 피칭폼에서 김광현이 가장 역동적이었다면 오른손투수 가운데는 야쿠르트 임창용이 최고였다. 오른손 사이드암인 임창용은 가끔 쓰리쿼터 스타일로 던지거나 거의 오버스로 폼으로 공을 뿌릴 때도 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넘기는 동작에선 차분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사이드암 치고는 상체를 상당히 꼿꼿하게 편 상태로 던진다. 오른쪽 어깨를 마치 활시위처럼 확 제끼고, 백스윙의 정점에서도 손목이 어깨보다 낮은 곳에 있는 독특한 투구폼이다. 한 투구 동작 내에서 점점 더 와일드해지는 스타일이다.
삼성 권오준은 일전에 "창용이형은 (백스윙때) 오른쪽 팔을 접어서 밑으로 가져간다. 손목 위치도 독특하다. 그런 동작으로 공을 던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다른 투수는 그렇게 던지면 제구 잡기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임창용은 내딛는 왼쪽 발이 1루 방향으로 오픈돼있다. 무릎은 여전히 타자를 향한다. 얼핏 근육이 뒤틀릴 것처럼 독특하지만 유연성이 좋기 때문에 자신만의 폼으로 만들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양 팔의 각도는 마치 갈매기 같다.
한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왼쪽 다리를 거의 머리 높이까지 하이킥으로 올렸다. 하지만 체력과 제구력을 얻기 위해 다리를 많이 내렸다. 넥센 김병현은 한창 좋았던 10여년 전 피칭후 마운드를 박차고 오를 것처럼 와일드한 폼을 보여줬다. 그후 발목에서 시작된 부상이 여기저기로 옮겨가면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던 김병현의 피칭폼은 없어졌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