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올림픽대표팀의 시리아전 직전 점심 미팅에서 스크린 속 선발명단에 뜬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깜짝 놀랐다. 심장이 떨렸다"고 했다. 3만3000여명이 운집한 뜨거운 그라운드는 평생 잊지 못할 첫 경험이 됐다. "그렇게 많은 응원을 받으며 뛰기는 처음이었다. 응원소리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올림픽대표팀에 첫 입성한 '2년차 프로 축구선수' 이종원(23·부산)은 이날 전반 33분 '택배 크로스'로 김기희의 선제 헤딩골을 도왔다. 전매특허인 왼발 프리킥이 빛났다. 하프타임 홍 철(성남)과 교체되기 전까지 왼쪽 윙어로 쉴새없이 뛰었다. 올림픽팀 데뷔전에서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전날 세트피스 훈련에서 감독님이 짧고 강한 크로스를 앞쪽으로 올려주라고 하셨다. 훈련대로 됐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기희가 잘 넣었다"고 겸손해 했다.
미드필더 이종원은 17, 18, 19세 연령별 대표를 거치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빛나는 순간마다 닥친 부상은 시련이었다. 2009년 2월, 20세 이하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호 훈련소집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발표 당일 발목을 다쳤다. 지난해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드래프트 2순위로 부산에 입단했다. 프로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5월5일 K-리그 컵대회 강원전에서 도움을 기록했고, 바로 다음 경기인 5월11일 전남전에서 왼발 프리킥으로 데뷔골을 신고했다. 그러나 6월 29일 K-리그 컵대회 포항과의 8강전에서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이 끊어졌다. 첫 시즌을 4경기 1골1도움으로 마감해야 했다.
지긋지긋한 부상을 털고 3년만에 입성한 '홍명보호'에서 꿈같은 선발 기회를 부여받았다. 사력을 다해 뛰었다. 전반 45분이 눈깜짝할 새 지나갔다. "전광판 시계를 보면 20분이 훅 지나가 있고, 순식간에 45분이 지나가더라. 너무 재밌었고 너무 아쉬웠다"며 웃었다.
빠르고 부지런한 '왼발의 스페셜리스트'다. '질식수비' 부산 출신답게 수비력도 단단하다. 차분히 자신의 축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런던을 가느냐 안가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존 선수들도 많은데 갓 들어간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이종원'이라는 축구선수를 알릴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겸손했다. "(서)정진이와 벤치에 앉아 3만3000명의 관중들이 이제 나를 알아보겠다는 얘기를 나눴다"며 웃었다. "올림픽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는 내 축구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다. 런던행과 무관하게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거라고 믿는다"는 속깊은 각오를 드러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포털 사이트에 '이종원' 이름 세글자를 치면 탤런트 이종원이 가장 먼저 뜬다. 축구선수 이종원은 "포털 프로필에 내 사진도 안뜨더라"며 푸념했었다. 축구선수' 이종원이 '탤런트' 이종원보다 반짝반짝 빛날 그날을 꿈꾼다. 휴대폰 컬러링은 언제나 '축구왕 슛돌이'다. '패스패스패스! 내 꿈은 축구왕, 세계에서 제일 가는 스트라이커~.' 중학교 때부터 단 한번도 바꾸지 않은 한결같은 컬러링이다. 그의 꿈도 그렇게 늘 한 방향을 향해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